◇ 시래기의 무한 변신
가을걷이가 끝나고 김장철이 다가 왔다. 동네 어귀에도 배추를 쌓아 놓은 노점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배추밭이 휭하니 비어 있는 곳이 보인다. 벌써 베어지어 어느 도시인에게 팔려나간 것이다. 무가 자란 곳도 구멍이 송송 나있다. 무밭과 배추밭은 마늘을 심기 위하여 갈아엎어지고 있다. 김치를 담고 나면 무청과 배추부스러기들은 시래기로 탈바꿈되어 식탁을 즐겁게 한다.
무청의 어린 순은 김치를 담아 먹어도 맛깔스럽다. 열무김치보다는 약간 질기지만 적당히 익어 신맛이 나면 다른 어떤 김치보다 맛이 좋다. 국수를 담아 무청김치와 버무려 먹어도 별미다. 무청의 어린 순을 소금에 절이고 풋고추와 마늘을 갈아 넣고 밥을 으깨어 숙성하면 톡 쏘는 신맛이 일품이다. 남도지방에서 즐겨 담아 먹는 무청김치는 어린순이 질겨지면 담아 먹을 수가 없다.
김장을 하기 위하여 뽑혀진 무는 깍두기를 담거나 채 썰어 배추김치양념에 들어간다. 김장을 하고 남은 무는 토광에 저장했다가 겨울 내내 무국을 끓여먹거나 채 나물을 만들어 먹었다. 잘려진 무청은 짚으로 엮어 그늘진 처마에 매달아 말렸다. 삶아서 말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영양소가 파괴된다고 하여 대부분 푸른색이 도는 그대로 말렸다.
배추 부스러기역시 그늘에서 말렸다. 누렇게 될 때까지 말렸다가 삶아 된장국을 끓이면 무청 시래기보다 부드러워 식감이 남다르다. 매번 삶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엄마는 가마솥에 시래기를 넣고 푹 삶아 세척한 다음 잘게 썰어 된장에 버무려 커다란 항아리에 보관했다. 필요 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 물만 부우면 다른 양념 들어가지 않아도 맛이 좋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매달아 놓은 시래기를 갔다가 된장국을 끓여 먹었다. 이제 사먹지 않으면 시례기도 맛볼 수 없게 되었다. 천한 음식으로 취급받았던 시례기가 섬유질이 풍부하고 각종 무기질이 많다는 소식에 건강식으로 탈바꿈 된지 오래다. 찾는 사람이 많다보니 대량생산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다. 하우스 안에 말려 놓은 시래기를 종종 볼 수가 있다. 길거리 할머니들도 시래기를 다발 채 갖고나와 파는 모습도 보인다.
무청시례기는 푹 삶아 된장에 버무려 나물로 먹어도 손색이 없다. 시래기밥을 만들어 파는 전문식당도 생겼다. 간장에 갖은 양념을 하여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 필요 없이도 한 그릇 뚝딱 해치운다. 특히, 변비로 고생하는 여성분들이 시래기밥을 즐겨 먹으면 깔끔하게 치료된다고 한다. 소화가 잘되고 배변이 원활하여 신진대사에 문제가 없다면 피부가 고와지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시래기의 또 다른 변신, 해장국에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다. 감자탕에도 시래기가 없다면 깊은 맛을 낼 수가 없다. 감자탕에 들어가는 시래기는 대부분 얼갈이를 말려 이용한다고 한다. 부드럽기가 아가씨 피부 같아 살짝만 씹어도 녹아내린다.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시래기는 푸성귀가 없는 겨울철 무기질 보충에 일등공신이다. 시래기가 들어간 구수한 된장국이야말로 까다로운 도시인의 입맛을 돋우는데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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