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모내기 철

말까시 2014. 6. 2. 15:05

 

 

◇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모내기 철

 

연일 선풍기를 켜지 않고는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비가 내려 더운 기운이 사라졌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차갑기까지 하다. 피부는 민감하다. 빗물이 빼앗아간 열을 직감하고 소름을 만들어 올린다. 끈적였던 목덜미가 파우더를 바른 것처럼 뽀송하다. 먼지 하나 없는 신선한 공기는 폐부 깊숙이 들어가 상쾌함을 더해준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는 저만치 물러갔다.

 

모내기가 한창이다. 바둑판처럼 정리된 들녘에서는 이양기가 바쁘게 움직인다. 모내기를 끝마친 논과 그렇지 않은 논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녹색의 작은 물결이지만 모가 자라는 논에는 생명들이 꿈틀댄다. 개구리도 모여 들고 그것을 먹이로 삼는 뱀도 모습을 드러낸다. 모내기가 끝난 논두렁에는 아낙들이 콩을 심는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오지만 빈틈없이 호미질 하여 가을을 기다린다.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풍성한 가을을 맞이할 수 없는 것이다. 시골 들녘은 부지깽이도 거든다는 무척이나 바쁜 시기다.

 

모내기철이 다가오면 날을 잡아야 한다. 워낙 많은 일손이 필요로 하는 모내기는 온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야 한다. 집집마다 날을 정해 품앗이를 해야 하는 이유다.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모심는 일이야말로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일 년 중 가장 고된 일을 하는 시기가 모내기철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모내기를 하다보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쪼그리고 앉아 모를 뽑아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거머리가 달려들어 뜯어내는 것도 성가신 일이다. 하루 종일 모내기를 하다보면 녹초가 되고 만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한숨 자고나면 깨끗이 가신다. 온돌의 효능이다.

 

아이들은 못줄을 옮겨주는 일을 했다. 거리를 맞추어 못줄을 옮기는 것도 신경을 써야 한다. 반대편과 넓이가 다르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어른들이야 대충 옮겨도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사람들은 현명하다. 일정하게 유지하는 잣대를 만들었다. 눈썰미가 없는 아이들도 손쉽게 못줄을 잡을 수가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촌에서 코흘리개 아이들도 일손을 돕는데 한몫을 했던 것이다.

 

모를 심기위해서는 봄부터 물을 대고 갈아엎어야 한다. 소의 힘을 빌려 논바닥을 갈아엎는 일 또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무거운 쟁기를 손에 쥐고 논을 가는 것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중심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생땅으로 남는 부분이 있다. 생땅은 써레질을 해도 그대로 남는다. 욕먹기 십상이다. 쟁기질 역시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바닥을 고르는 써레질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다.

 

새벽 같이 나가 허리 굽혀 모내기를 하는 농부들의 고단한 일과는 달포를 지나야 끝난다. 먼저 심은 논과 그렇지 않은 논은 확연히 다르다. 대부분 먼저 모내기를 하려고 서둘러 날을 잡으려 하지만 이웃과 겹치는 경우가 있다. 마을 회의를 열어 조정했다. 일찍 심은 논은 제법 푸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방 같아진다. 일 년 내내 얼마나 잘 가꿈에 따라 소출이 달라질 뿐 모내기순서와는 큰 차이가 없었다.

 

모든 것을 인력으로 해야만 했던 일들이 기계가 등장함에 따라 전광석화처럼 빨라졌다. 많은 일꾼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났다. 아무리 기계화가 되었다 한들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는 것이다. 지금 시골에는 팔순 노인들이 허리 굽혀 힘든 농사일을 하고 있다. 곰방대를 물고 진두지휘를 하는 것도 은퇴할 나인데 일꾼이 없으니 어찌 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죽는 그날까지 손에서 흙을 놓지 않겠다는 어르신들의 고달픈 나날은 죽음에 이르러야 끝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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