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까시의 추억

호랑이 장가가는 날

말까시 2014. 6. 24. 15:03

 

  

◇ 호랑이 장가가는 날

 

요 며칠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덮고 바람이 일렁이는 순간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고 있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해가 뜨고 다시 비가내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넋을 놓고 일하다가 우당탕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깜짝 놀란 여인들은 숨을 크게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연일 내리는 빗방울 덕에 시원해서 좋고 수시로 변하는 창밖의 풍경에 볼 것 많아 좋다. 어른들은 “비가 오다가 갑자기 해가 뜨는 날을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 했다.

 

여름이 오면 소나기가 쏟아진다.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은 농사일에 훼방꾼이다. 비옷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소싯적 농부들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아야 했다. 일을 하다가 멈출 수 없는 것이다. 농사일을 제때에 해주지 않으면 그만큼 소출이 적다. 잡초제거는 인내가 필요하다. 생명력이 대단하여 풀을 메고 돌아서면 뒤따라 자라는 것이 잡초라 했다. 끈임 없이 제거를 해주지 않으면 곡식이 자라지 않는다.

 

소나기는 개울물을 금방 불어나게 한다. 아이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개울을 건너는 것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잘못하다가는 급류에 휩쓸려 생명을 앗아 갈 수도 있다. 돌아서 가기에는 멀고 펄쩍 뛰어가기는 위험 부담이 커서 지혜를 모아야 했다. 굵은 나무를 주어다가 칡넝쿨로 엮어 임시 다리를 만들었다. 연장 하나 없어도 주머니칼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열고 닫을 수 있는 주머니칼은 아이들에게는 필수였다. 고구마를 깎아 먹을 수도 있고 나무를 잘라 놀이기구를 만드는데도 요긴하게 쓰였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비상이 걸린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를 비롯하여 각종 곡식을 거두어 들여야 한다. 워낙 급작스럽게 쏟아지는 빗방울에 조금만 방심해도 비를 맞추어 낭패를 본다. 애써 해놓은 빨래도 다시 세탁을 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그것뿐만 아니라 멍석에 물이 스며들면 금방 마르지 않는다. 잘못하다가는 힘들게 만든 멍석이 썩을 수도 있다. 고추도 중요하지만 멍석을 망쳐버리는 오류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멍석 하나 만들려면 겨울 내내 볏짚과 씨름을 해도 하나밖에 만들지 못한다.

 

소나기에 대한 일화가 있다. 보통 들에 나가 일을 할 경우 소를 데리고 간다. 목줄을  말뚝에 묶어 놓는다. 갑가스럽게 소나기가 내리면 풀을 뜯던 소들이 안절부절 못한다. 더군다나 우르릉 쾅쾅 하늘이 울면 말뚝을 뽑아버리고 달아난다. 집안의 밑천인 소가 잘못되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밭갈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바쳐놓은 지게작대기는 힘없이 넘어지고, 점심 먹은 것이 잘못 되었나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소는 날뛰고 지게작대기는 넘어지고 설사가 나올 것만 같은데 허리끈은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무엇을 우선시해야 할까.

 

거의 매일 같이 하늘이 우는 것을 보니 본격적인 장마와 함께 무더위기 시작될 날이 머지않았다. 물이 잘빠지도록 밭고랑을 돌봐야 하고 도랑이 막히지 않도록 이물질도 제거해야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논두렁이 무너지고 애써 심어놓은 곡식이 떠내려가면 일 년 농사 망친다. 비오는 날이면 습도가 높아 멀쩡했던 곡식에 벌레가 생긴다. 쌀벌레가 한번 생기면 나방이 되기까지 쌀눈을 다 파먹어 싸라기가 되고 만다. 찬장에 넣어 놓은 서리태콩을 서둘러 김치냉장고에 옮겨야 한다. 유비무환만이 여름을 안전하게 날수 있는 비결이다.

 

※ 호랑이처럼 고양과 동물들은 사랑의 행위가 아주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뜨는 그 짧은 시간에도 짝짓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온 말이라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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