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름날 밤 아이들은 무엇을 했을까.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다. 휘영청 밝은 둥근달을 보며 소원도 빌어보고 잡귀도 몰아내는 뜻 깊은 날이다. 부럼도 깨트려 일 년 동안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날이기도 하다. 휘영청 밝은 달밤에 횃불을 만들어 돌리기도 한다. 겨우내 날리며 갖고 놀았던 연도 실을 끊어 액운을 날려 보내야 한다. 어른들은 윷놀이를 하면서 보름날을 즐긴다. 각종 놀이 중에서 척사대회는 지금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 설 명절부터 시작된 축제가 막을 내리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 다듬어 연살을 만든다. 두꺼우면 연이 잘 뜨지 않는다. 다듬어진 대나무 살을 창호지에 붙여 가오리연을 만들었다. 방패연은 만들기 어렵다. 잘못 만들면 뱅뱅 돌다가 그대로 추락하고 만다. 그에 비해 가오리연은 대나무살 두 개면 족하다. 창호지가 없어도 달력을 이용하여 만들기도 했다. 연자세도 손수 만들었다. 나무를 잘라 직사각형으로 짜 맞추어 실을 감으면 훌륭한 얼레가 되는 것이다. 뒷동산에 올라 연을 뛰어 연싸움도 했다. 연을 날리기 위해 뒷걸음치다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했다. 어릴 적 몸은 유연해서 크게 다치지 않는다. 겨우내 갖고 놀던 연은 보름날 날려 보내야 한다. 보름이후 연을 날리면 달아났던 액운이 다시온다하여 절대 날릴 수가 없었다. 한강에 나가보면 연을 날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것 같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낮에 신나게 놀다보면 저녁밥은 꿀맛이다. 저녁밥을 든든히 먹은 아이들이 깡통을 들고 마을 어귀에 나타난다. 횃불이 활활 타오르도록 깡통 옆구리에 구멍을 냈다. 성냥을 그어 불을 살린 다음 풀숲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장작을 올려 알불을 만든다. 불을 머금은 장작개비를 깡통에 넣고 하늘을 향해 돌린다. 불꽃이 살아나면 낮에 주워놓았던 바싹 마른 소똥을 깡통에 넣고 다시 한 번 힘차게 돌린다. 불꽃이 절정에 올랐을 때 하늘로 집어 던지면 불씨가 쏟아진다. 환상적인 불꽃 축제가 되는 것이다. 여러 개의 깡통이 하늘로 솟구치며 만들어진 불꽃은 도깨비불처럼 춤을 추웠다. 그 시절 깡통구하기가 쉽지 않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는 아니다. 부러움을 사며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아이들도 많았다. 보름날 밤 즐겨 했던 횃불놀이는 이제 시골에서도 볼 수가 없다.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해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늦은 밤까지 횃불놀이를 하다보면 허기가 진다.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속에 무엇인가 빨리 집어넣지 않으면 쓰러질 것만 같다. 각자 집에 가서 밥을 먹고 다시 만난다는 것은 바짝 달아오른 흥을 식혀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이들은 의기투합을 한다. 서리를 하자는 것이다. 동네 구석구석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다. 밥과 닭서리조로 나뉘어 흩어진 아이들은 일순간에 먹을 것을 들고 나타난다. 냄비에 물을 끓여 털을 뽑아 소금 한줌 넣고 삶아내면 그만이다. 보름날이라 오곡밥이 주를 이루었다. 장독을 열고 훔쳐온 김치는 손으로 쭉쭉 찢어 먹었다. 어둠속에서 불을 지피며 먹는 야식은 정말 꿀맛이다. 다음날 온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도둑을 잡겠다고 주인어른이 수색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으니 어찌 할 도리가 없다. 날쌘 돌이들의 야밤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다. 온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엄포를 놓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된다.
불타는 금요일이며 보름날인 오늘 저녁에 잡곡밥과 각종나물로 차려진 밥상을 맞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땅콩과 호두를 준비하여 가족과 함께 부럼을 깨는 것으로 보름날의 전통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면 참으로 뜻 깊은 만찬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늘이 노하지만 않는다면 공원에 나가 휘영청 밝은 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사무탈을 기원하고 바라옵건대 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도록 빌어 봄이 어떨까. 신명나는 축제는 오늘로서 끝이다. 내일부터는 일 년 농사를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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