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 방콕여행
어쩜 이렇게 날씨가 좋을 수가 있을까. 나들이 계획이 없는 날이면 하늘은 맑고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분다. 창문을 열고 내다본 아침 풍경이 망막을 통하여 저장되는 순간 마음을 몹시 흔들어 놓았다.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거실을 왔다갔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나를 보던 아내는 “아이고 불상해라. 어쩐 일로 이렇게 맑은 날, 나들이 계획이 없을까. 주말마다 나가더니만 방콕하려면 얼마나 속상할까” 동태전을 열심히 붙이고 있는 아내는 아침 일찍 나갈 참이었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동태전은 막걸리를 가져오라 손짓을 했다. 아침부터 빈속에 한 사발 들이키니 오장육부가 찌릿찌릿 취기가 올라왔다. “자기 말이야! 요즈음 애들이 김장김치가 맛이 없다고 투정하거든. 배추김치 좀 담아놓으면 안되겠어.” 아내는 모처럼 몸을 배배꼬며 애교 섞인 말로 간절하게 부탁했다. “할 일도 없는데 실력발휘나 한번 해보지 뭐. 생강하고 마늘 꺼내놓고 가.” 아내는 생긋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당탕탕 설거지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정리하고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아내의 엉덩이는 몹시 씰룩거렸다.
아이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다. 막걸리 한 사발에 아침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화장실에 들어가 물 한바가지를 들이 부었다. 평상시처럼 비누거품을 만들어 얼굴에 바르고 잔털하나 없이 면도를 했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여유를 부리며 샤워를 하고 구석구석 닦아 모양을 내니 평소 아침에 보았던 내 모습이 아니었다. 야호! 야호다.
‘각시탈’을 천원지불하고 다시보기를 클릭했다. 휙휙 날며 일본순사를 쓰러트리는 액션에 속이 후련했다. 목이 말라 거실에 나와 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아들놈은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야인마! 여기가 PC방인 줄 아냐. 에어컨 빨리 안 꺼.”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비싼 전기를 소모하고 있다고 야단을 쳤다. “아빠가 술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저도 게임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아들은 계속하여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배추(4,000원), 대파(3,900원), 쪽파(3,900원), 마늘(3,000원), 홍고추(2,900원) 두 마리의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 채소 및 양념가격이 폭등했다. 김치는 절임에 미학이라 했다. 늘 김치연구에 매진하여 어느 정도 소금을 너야 할지 꿰뚫고 있다. 장모님께서 만들어주신 멸치액젓과 새우젓을 넣고 버무려 놓고 보니 붉은 색이 유난히 고왔다. 플라스틱 통에 차곡차곡 담아 베란다에 내어놓았다.
다음날 아내는 자전거를 끌고 또 나갔다. 다행히 닭죽을 끓여 놓고 나가서 아침과 점심을 해결했다. 미처 읽지 못했던 책을 꺼내 읽는데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 잡상인의 앰프소리, 수시로 누르는 초인종소리에 독서에 열중할 수가 없었다. 답답해서 시장으로 나갔다. 허름한 할머니 식당이 있다. 허파전골을 맛있게 하여 TV에 소개된 유명한 맛 집이다. 포장을 해왔다. 아내가 들어오자마자 보글보글 끓여 온 식구가 푸지게 먹었다. 소주도 한 병 거뜬히 비웠다. “어디 김치 맛 좀 볼까.” 아내는 냉장고에서 꺼내 한 접시 담아냈다. “오! 환상인데, 점점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구먼, 나중에 장사해도 되겠어.” 미안한 나머지 칭찬에 열을 올렸다.
무척이나 맑고 깨끗한 주말 이틀 동안 방콕을 했다. 은퇴 후의 삶이 어찌될까. 생각만 해도 겁난다. 일할 수 있는 재주,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재능, 즐거운 만남, 준비하지 않으면 저절로 오는 행복이 아니다. 죽는 그날까지 할 일이 있어야 고독으로부터 해방되어 아름다운 마무리 할 수 있다고 한다. 인생1모작이 얼마 남지 않았다. 활짝 핀 제2의 인생을 위하여 지혜를 모으러 두루두루 찾아 나서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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