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술보다 자기가 더 좋아

말까시 2012. 8. 21. 15:11

 

 

“술보다 자기가 더 좋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폭우로 높이 자란 풀잎들이 자빠졌다. 날카로운 물살은 축대를 허물고 옹벽을 무너뜨려 삶의 터전을 짓밟았다. 작은 소하천에는 오수가 넘쳐흘러 물고기들이 폐사했다. 허옇게 배를 들어낸 물고기들은 어른 팔뚝만한 것부터 새끼손가락만한 것까지 무수히 많이 죽어 떠내려갔다. 연일 계속되는 폭우로 저지대 도시민들은 침수될까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 했다. 폭염에 헐떡이다가 폭우가 덮쳐버린 도시는 무겁고 칙칙한 기운이 맴돌고 있다.

 

“자기는 술이 좋아 내가 좋아” 아내의 물음에 둘 다 좋다고 했다. “그럼 아들이 좋아 내가 좋아” 약간 멈칫하다가 둘 다 좋지 했다. ‘내가 좋아 딸이 좋아’라고 물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탁자에다 휙휙 던지는 것을 보니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밥숟가락을 뜨다 말고는 단단히 벼룬 듯 나를 주시하고는 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뭐 그래.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뭔지 알아. 뜨뜻미지근한 회색분자란 말이야. 애들도 없는데 내가 더 좋다고 하면 어디 덧나나. 내가 자기한데 얼마나 잘해주는 지 알아. 삼시세끼는 아니라도 집에 있을 때는 꼭 챙겨주잖아. 빨래해주고, 집안청소 혼자 다하고, 시장 봐다가 맛있는 반찬 만들어 우리식구들 뱃속을 호강시켜 주는 것 몰라. 그리고 제일먼저 일어나 아침식사준비하고 똑 같이 출근해서 하루 종일 일해서 살림에 보태잖아. 왜 그렇게 인색해. 따듯한 말 한마디 하는 데 천만금의 돈이 들어 아가리가 아파. 참나 이제껏 불평불만 없이 잘해주었더니 저절로 가정이 돌아가는 줄로 아는가 보지. 나도 이제 생각을 달리해야겠어. 말해봐. 술이 좋아 내가 좋아. 양조장을 다 폭파 해버리고 말 것이야.” 술도 못 마시는 아내는 숟가락을 탁 놓더니만 내가 마시고 있던 막걸리 사발을 당겨가더니만 홀짝 마셔부렸다. “천부당만부당 지가 잘못했구만이라. 자기가 우리 집에서 최고지라” 머리를 조아리며 억지 절을 올려야 했다.

 

밥과 함께 식탁에 올라가 있는 것이 소주 아니면 막걸리가 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내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 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자를 잃어버리고 이승에 나와 불만이라 하면서 다시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술의 좋은 점은 전혀 고려치 않고 나쁜 점만을 부각시키면서 주당들의 애환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금술 좋은 부부들은 밥상머리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즉석에서 뽀뽀도 한다고 하는데, 끼니마다 “술이 그렇게 좋아” 하면서 눈을 흘긴다.

 

요즈음 폭우로 인하여 술 맛 나는 날의 연속이다. 아침에 맥없이 멍청하게 있다가 점심 먹고 힘을 얻어 오후 내내 맛집을 검색하다가 퇴근이 임박하면 문자메시지를 수시로 검색한다. 야호!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숙취로 비실비실 했던 육신은 갑자기 기운이 되살아나 우산을 높이 들고 술 향기 찾아 나선다. 우산위에서 툭툭 치는 빗방울장단에 신이 난 주당들은 퇴근길이 여간 즐거울 수가 없다. 하루의 피로를 확연히 날려 버릴 수 있는 것은 알코올만 한 것이 없다. 피곤이 밀려와 눈까풀이 천근만근이라도 한 잔술이면 두 눈이 동글해진다. 구수한 입담까지 오고가다보면 세상이 내 것인 양 호령을 한다. 기분 째지는 이 기분, 맹물파들은 모른다. 모두가 회장이 되고 대통령이 되어 귀가를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자리인가. 좋은 자리 나누어 가져 너 좋고 내가 좋으면 우리나라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닌가. ‘건강을 위하여 지나친 음주는 삼갑시다.’ 요즈음 이 글씨가 잘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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