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 환경 쌀’ 잘 먹고 있습니다.
도시의 하천에 제법 물이 흐르고 있다. 비가 내리면서 둔치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의 키가 나날이 커가고 있다. 시들어 가던 잎들이 영양분이 넘쳐나자 푸른 광채를 뿜어내고 있다. 담쟁이 넝쿨도 하루가 다르게 타고 올라 옹벽전체를 푸름으로 덮었다. 하수구와 숲 사이를 오고가는 쥐들은 거대해진 몸집으로 움직임이 둔했다 두 놈이 사랑싸움을 하고 있는지 요리조리 도망가고 뒤 따르기를 반복했다. 날마다 내리는 빗방울의 영향으로 하늘아래 풍광은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처가에서 가져온 쌀이 한 달 내내 차 트렁크에 실려 있었다. 시골에 다녀오면 차 트렁크에 먹을 것들로 가득하다. 집에 도착하여 집에까지 옮기려면 장난이 아니다. 우선 필요한 것부터 챙기다 보면 쌀부대는 오랫동안 트렁크에서 잠자는 경우가 많다. 요즈음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바람에 지하주차장에 있는 애마를 보기도 힘들다. 여름에는 습한 기운이 엄습하여 쌀벌레가 기승을 부린다. 다행히 종이포장으로 단단히 박음질되어 벌레의 침투를 막을 수 있었다.
“그 무거운 것을 자기가 들고 왔나” 쌀통에 쌀이 떨어져 아내가 지하주차장에서 쌀부대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20㎏남짓 쌀부대를 연약한 여자의 힘으로 들고 왔다는 것에 놀라 “대단하십니다.” 했더니 “그럼 내가 들고 왔지 어느 놈이 갖다 주겠나, 자기도 집안 살림에 관심 좀 가져봐, 쌀통도 열어보고 애들이 지금 뭐하고 있는지, 혹시 근심걱정거리가 없는지, 자기는 도대체 집안일에 관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이렇게 핀잔을 들어야 했다. 쌀부대를 지하주차장에서 낑낑거리고 들고 온 것을 상상하니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다.
본가와 처가에서 번갈아 가며 쌀을 갔다 먹었었다. 지금은 엄마가 몸이 편치 않아 농사를 지을 수가 없어 주로 처가에서 먹거리를 공수 받아 해결하고 있다. 처가의 쌀은 간척지에서 재배된 것으로 윤기가 별로 없고 힘 대가리가 없다. 그런 반면 내 고향 고래실에서 수확한 쌀은 기름기가 잘잘 흐르고 밥맛이 끝내준다. 가끔 밥맛을 비교하면 아내는 기분이 상해 토라지곤 했다. 처가는 남쪽이라 그런지 김치를 비롯하여 발효 식품 모두가 짠 편이다. 처음에 적응하지 못하여 애를 먹었는데 지금은 그 맛에 푹 빠져 특별주문까지 한다. 모든 것은 길들여지기 나름인 것 같다.
전화벨이 울렸다. 컴 앞에 있던 아들이 달려와 받으려고 하는 것을 잽싸게 수화기를 낚아챘다. 목소리도 크고 풍채도 대단하신 장모님이었다. “이 서방 잘 있는가, 이번 여름에 꼭 올끼제, 애들은 공부한다고 못 와도 이 서방은 꼭 와야 한데이.” 사실 딸내미가 고삼이고 해서 이번 여름휴가는 생략하기로 했었다. 해년마다 본가를 들렸다가 처가에서 바닷바람 쏘이는 것이 연례행사였었다. 신신 당부하는 장모님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갈 거구만요” 하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장모의 목소리가 신이 났다. “이 서방 그라고 말여 저번에 준 쌀 잘 먹고 있제, 그 쌀이 건강에 좋은 ‘칠 환경 쌀’잉께 맛있게 먹드라고” 새로운 품종이 나왔나 의아했다. 일단 “네 잘 먹고 있습니다. 근데 어머님 ‘칠 환경 쌀’이 새로운 나온 품종입니까. 전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장모님께서는 농약도 안친 좋은 쌀이라 거듭 말하면서 여름휴가 때 꼭 오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장인어른과 통화를 하고나서 의문점이 풀렸다. ‘친 환경 쌀’을 잘못 표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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