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술(酒)퍼마오.

말까시 2011. 12. 17. 12:00

 

 

◇ 술(酒)퍼마오.

 

날은 벌써 보름이 지나 그믐을 향해 쏜살 같이 달아나고 있다. 연말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영글기도 전에 한해가 가려한다. 때마침 불어 닥친 영하의 날씨는 뜨거운 국물과 독주를 생각나게 한다. 바람 끝이 찬 새벽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해장국집으로 달려가는 주당들은 손을 비비며 밤새 안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술 취한 굴뚝은 하얀 솜사탕을 만들어 흩어졌다 붙이기를 반복하여 하늘에 버렸다.

 

의례히 연말이 되면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퍼마신다. 각종 모임에 불려 다녀 마시다 보면 간은 혼수상태로 빠지기 마련이다. 얼굴은 푸석하여 왕모래가 줄줄 흐른다. 피부는 습기를 잃고 거칠어지면서 탄력이 없어진다. 아무리 많은 구리모를 발라도 소용이 없다. 머리카락도 윤기를 잃고 끝이 갈라지면서 탈색이 된다. 술이 주는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알코올이 빼앗아 가버린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똘똘 뭉쳐진 한국의 사회는 어디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다. 주말이면 각종 집안 대소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조용히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중에 지친 몸을 풀어야 하거늘 더 혹사시킨 신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병들게 마련이다. 연일 술자리에 머무는 시간이 늘다보면 젊은 나이에 비명에 가는 수가 있다. 술(酒)퍼마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온라인 문화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각종카페 동호회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만남을 주선해준다. 요즈음에는 스마트폰이 나와 장소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무제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에 편리함을 만끽하고 있지만 와중에는 병폐도 있다. 만남의 숫자가 두 배로 늘어났다. 이곳 역시 술이 빠질 수가 없다. 간이 두 개라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주말, 늘어지게 자고 싶지만 전날 과음으로 인하여 밤새도록 물 찾아 냉장고문을 수없이 열고 닫는다. 새벽에는 배탈이 나서 화장실 들락거리다 보면 아침도 먹지 못하고 정신을 못 차린다. 이불을 끌어안고 몸부림치다 보면 아까운 주말 다 지나가 버린다. 오후 늦게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라면국물에 해장을 하고는 어디론가 모임을 향해 또 달려간다. 정 많은 한국 사람들 부르면 무조건 달려가는 묘한 습성이 있다. 이한 몸 부서져도 얼굴을 내밀고 한 잔술에 희희낙락해야 직성이 풀린다. 대단한 술(酒)퍼 민족이다.

 

지천명에 오르니 하늘은 높고 넓은 땅은 내 것 하나 없다. 장성한 자식은 빼앗아가는 것 점점 많아지고 기가 살아난 아내는 잔소리만 늘어간다. 챙겨야 할 것 들은 산더미 같이 쏟아지는데 주머니는 점점 더 얇아지고 있다. 저 멀리 시골에서 아프다 소리치는 부모님 목소리가 아련히 메아리 쳐온다. 점점 흐려지는 시력은 콧잔등에 무거운 짐을 얹어 놓았다. 허옇게 변해버린 머릿결을 감추기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아이고나! 온몸이 쑤셔오는 것이 성한 곳 하나 없는 것 같다. 야들아! 술(酒)퍼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