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총각김치가 최고여

말까시 2011. 10. 16. 10:55

 

  우리집마님께서는 자전거 동호회 가입하더니만 집안일에 신경을 안쓰고 자전거만 생각합니다.

  어제도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장만하느라 부산을 떠는 바람에 주말인데도 일찍일어나야 했습니다.

  등에 짊어진 배낭속을 몰래 훔쳐보니 생전보지도 못했던 유부초밥, 용가리치킨, 단감, 사과,  커피믹서 등 셀수 없이 많더군요.

  나가시면서 "김장김치 질렸으니까 총각김치나 담으셔"

  마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 죽음입니다. 요즈음 자전거를 타서 허벅지 엄청나게 굵어져서 이단옆차기로 들어오면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우산을 바쳐 들고 마트에가서 튼실한 알타리무우를 사가와 칼로 다듬어 소금에 절였습니다.

  밖에는 천둥과 함께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서글퍼집니다. 전국의 산에서는 단풍이 춤을 추고 있다는데 집에서 달랑무우나 다듬고 있는 나는 뭐야...


  대파를 가늘게 썰고 쪽파는 쑥닥 썰어 양파와 함께 장모가 순수 담아준 멸치액젓을 넣고 버무려 놓았습니다.

  대파와 양파를 칼로 써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슬퍼서 한동안 눈물을 닦지 않았습니다. 지나온 세월을 더듬고 있는데 총각시절 자취생활이 생각나더군요. 어데갔다오면 탄불은 꺼져 있고 반찬은 없고 라면으로 연명하던 그림이 눈앞에선명, 눈물이 폭포가되어 배꼽까지 적시더군요...집에서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거든요.

  양념을 만들고 절여논 달랑무우를 보니 숨이 죽었더군요. 축 늘어져 있는 잎파리에 비해 무우는 아직도 탱글탱글 뽀얗기가 백옥 같더라고요.

  여름에 씨부려 싹을 트고 자라서 인간에게 맛있는 김치의 재료로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하는 달랑무우가 불상해지더군요.

  생긴 것이 거시기 같아서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독차지 하는 달랑무우지만 生은 너무나 허무하지요.

 

  김장김치는 통체로 담아도 되지만 금방 먹을 김치는 한입에 쏙 들어오도록 저렇게 잘게 토막을 내야 합니다.

  요즈음 애들은 워낙 까닭스러워 먹기 좋게 해주지 않으면 분식집으로 걍 달려갑니다.

  잘게 토막내어 뒤집어주기를 여러번 하다보니 손바닥 피부가 울틍불틍 거칠어 지더군요. 소금이 피부를 파고 들어간 것인지 피부속에 물이 빠져 나온 것인지. 여튼 소금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가 봅니다.

  저위 상단에 만들어 놓은 야채 양념에다가 풀을 쓰고 홍고추와 마늘 생강을 넣고 새우젓을 넣어 믹서기로 곱게 갈아 버무렸습니다. 보기좋지요.

  집안에는 매운기운이 가득 찾습니다. 갑자기 재채기가나오더군요. 얼마나 쎄게했는지 아까운 머리카락이 한우웅큼 빠져 곤두박질 치더군요.

  잽싸게 거울을 보니 정수리가 훵하내요. 이일을 어쩌나

앞으로도 계속하여 김치를 담아야 하는데 .....

 

   눈물을 흘리며 만든 양념에다가 총각무우를 넣고 잘버무리고 뒤집기를 여러번 하다보니 곱디곱더라구요. 

  멸치젓과 새우젓이 고추가루판에서 싸움을 하는지 매콤하면서 멸치의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새우젓은 싸움판에서 졌는지 반응이 없더군요. 잘익으면 그때 시원한 맛으로 실력발휘를 하겠지요.   

  고추의 아린맛과 젓국의 소금기는 손톱밑의 상처를 파고 들어가 고통을 주더군요. 이사실을 아내는 알까?  

  플라스틱통에 담았습니다. 한다발 사다 담았는데 야채양념을 많이 넣어서인지 가득 찼습니다.  

  탱글탱글한 달랑무우가 붉은 옷을 입으니 가을단풍처럼 이쁘더군요.

  요즈음 날씨가 선선하여 서서히 발효가 되어 맛갈스럽게 익은 달랑무우를 생각하니 침이 꼴깍....

  하루저녁 거실에 두었다가 냉장고에서 이삼일 더 익으면 그맛이 환상이겠지요. 실패는 없습니다.

 

  일단 한입에 물고 맛을 보았습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단맛이 제일먼저 신경을 타고 온몸을 흐르더군요.

  1센치 더 당겨서 매운 맛 더 당겨서 쓴맛 더당겨서 구수한 맛까지 더해 오감을 즐기려는 순간 컴하던 아들녀석이 맛보자고 달려들던군요.

  아들놈은 한입에 넣고 우직하게 씹더니만 "세상에서 우리아빠가 최고다"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치더군요.

  감동받았습니다. 계속하여 김치는 나의손에 영원히...

  거실 한구탱이에 요렇게 모셔놓았습니다. 김치통도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적당하게 보기좋지요.

  김치가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남요. 양념과 달랑무우가 치고박고 싸우는 소리에 낮잠도 못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마나님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비는 더세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아내를 생각하니 짠하더군요. 배가죽이 좀 늘어지면 어떠나 걍 같이 오래오래 살면그만이지... 


  희희낙락하며 들어오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안면을 가리고 있는 얼굴싸게로 표정을 읽을수가 없었습니다.

  애마인 자전거를 수도물로 샤워를 시키고 마른수건으로 물기를 닦고난뒤 잔소리를 늘어놓더군요.

  바닥에 떨어진 굵은 소금에 이쁜 발바닥에 상처가 났다며 당장 빗자루로 쓸어 담으라고 호통을치더군요. 싱크대 밑에 떨어진 물방울로 엉덩방아를 찧을번했다며  걸레를 던지며 훔치라 하더군요...아! 울고 싶어라...

  미우나 고우나 아내를 위해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고기반찬은 없지요. 저기 저 멸치볶음하나 있내요. 그래도 많은 반찬중에 총각김치가 제일 돋보이지 않나요.

  마나님 생각은 어떠신가 의중을 조심스럽게 떠보아씁니다. 한입을 물어 뜯어 우지직 깨물더니만 '제법인데' 하면서 흐~~음하고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던 여성특유의 신음소리를 내더군요. 고추맛보다 달랑무우가 더 맛있는가 봅니다. 오늘 담은 '총각김치' 대 만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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