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얼굴의 여인
아침에 안갠지 연무인지 부옇게 드리워져 불쾌했다. 시간이 지나며 햇살이 보이고 바람이 불어 창틀이 흔들렸다. 창문을 살짝 열어보니 좁은 틈으로 쏜살같이 들어온 바람은 책상위의 종이를 날렸다. 점심에 흘렸던 땀방울이 일순간 증발되어 사라졌다. 피부는 다시 뽀송해져 솜털을 꼿꼿하게 세운 채 시원했다. 비비꼬여 있던 난초의 촉들도 황금연휴를 아는지 물을 달라 아우성이다. 사람들은 평소와 달리 옷차림이 달랐고 저절로 그려지는 미소를 감추느라 입술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두들기는 좌판에는 관심이 없는 듯 시선은 자꾸만 창밖을 향한다. 삼일을 쉰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음 깊숙이 박수를 쳐본다.
가보자! 어디론가 가보자! 삼일을 무의미하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까지 계획이 없다면 대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펜션도 좋고 콘도도 좋다. 고향에 가서 부모에게 문안인사 드리고 효를 실천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일이다. 멋진 프로그램이 아니면 아이들은 좀처럼 동행하지 않으려 한다. 그만큼 머리가 큰 것이다. 아내 역시 눈높이가 이마 끝까지 올라가 의중을 반영하려면 평소 공부를 아주 많이 해야 한다. 예전과 달리 어디론가 가고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의견충돌로 다투는 일이 잦다. 나들이 계획을 짜는 일이 회사일보다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주머니가 헐렁해도 가기는 가야 한다.
시댁과 친정 가는 길은 극과 극이다. 시댁을 가기로 정해져 있는 날, 일주일 전부터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설거지하는 소리도 유난이 크다. 그릇과 그릇들이 마구 부딪혀 아프다고 큰소리를 쳐도 쇠망으로 된 수세미를 마구 문지르고 휙휙 던져버린다. 화장실이 더럽다고 괜한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당일 날 차가 밀릴 것을 대비하여 일찍 출발하자고 하면 머리가 아프고 피곤하다며 이불을 둘둘 말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고향 가는 것에 즐거운 나머지 큰방 작은 방 거실을 오간다. 이제나 저제나 일어날까 엄마의 동정을 살피는 것 같았다. “일어나~~아” 버럭 소리를 지르면 그때서야 고슴도치처럼 웅크린 몸을 풀며 이불속에서 나온다. 헝클어진 머리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아이고 피곤하다. 피곤해! 피곤해!”를 연발한다.
늦게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서는 공중목욕탕으로 착각을 한 것인지 좀처럼 나올 생각을 안 한다. 머리 말리는 데 한 시간, 화장하는데 한 시간 이렇게 지체하다 보니 해는 벌서 중천에 떠 있다. 차가 가장 밀리는 시간을 택하여 출발하고자 계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발을 신으면서 투덜거린다. 남들은 비까번쩍 구두를 신고 다니는데 이 신발을 산지가 언젠가 기억도 안 난다며 발길질을 하는 바람에 걸려 있는 우산이 우르르 떨어진다. 승강기가 멈추어 타려고 하면 휴대폰을 놓고 왔다고 다시 집으로 달려간다. 차라리 점심 먹고 가자는 아이들을 달래 고속도로에 접어들면 화장실이 급하다며 휴게소마다 차를 멈추게 한다. 일주일 내내 스트레스 받아 변비증상이 있어 배설이 시원치 않다고 한다. 미치고 팔딱 뛸 일이다.
옛날에는 시집살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빨래터에 가보면 방망이 소리가 내리칠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서방님 옷 다르고 시어머니와 시누이 옷 다르다. 평소 쌓인 응어리를 시어머니 시누이 옷에 분풀이 하는 것이다. 하늘높이 솟아오른 방망이가 중력가속도를 받아 내리치는 소리는 저 멀리 콩밭 매는 시어머니 귀언 저리까지 들린다. 가냘픈 며느리의 방망이 소리가 힘차게 들려오는 것에 시어머니는 제법 빨래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옆에 있는 아낙에게 자랑을 늘어놓곤 한다. 여인의 두 얼굴이다.
“어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나는 너를 내 딸처럼 생각한다.” 말짱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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