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아픈 추억 산딸기

말까시 2009. 3. 6. 15:08

 

    

‘산딸기는 나에게 아픈 추억을 만들어 주었지만 예쁜 놈이다.’


봄의 과일 하면 무엇보다도 딸기가 으뜸이다. 지금은 하우스 재배 기술이 발달하여 한겨울에도 딸기를 맛 볼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빨갛게 익은 딸기는 바라만 보아도 침이 절로 난다. 그 옛날 그렇게 맛있는 딸기를 맛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산딸기는 밭에서 재배하는 딸기보다는 맛이 덜 했지만 먹고 싶은 욕망을 해소해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산딸기 역시 부지런하지 않으면 맛 볼 수가 없다. 동네 근처의 언덕이나 산에 자생하는 산딸기는 보이는 족족 따먹는 바람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보다 먼저 더 높이, 더 멀리 찾아가 풀숲이 우거진 곳을 찾아 헤매야 만이 탐스럽게 익은 산딸기를 맛볼 수가 있었다. 잘 못하다가는 벌집을 건드려 혼줄 나는 경우도 있고, 개구리가 놀래 다라 나며 오줌을 갈기고 가는 바람에 딸기 맛이 비릿할 때도 있었다.


산딸기는 넝쿨딸기와 나무딸기 두 종류가 있다. 넝쿨딸기는 구릉지나 밭두렁 높지 않은 곳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열매는 나무딸기보다 크며 맛은 달콤하다. 나무딸기는 산중턱의 높은 곳에서 자라며 맛은 새콤달콤하다. 아마도 복분자라고 칭하는 것이 나무딸기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본래의 뜻과는 달리 복분자를 장기 복용하면 소변의 힘이 대단하여 요강이 엎어질 정도라고 하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 그날이 아마도 초등하교 4학년 어느 날인 것 같다. 친구 몇 명과 함께 산으로 놀러 갔다. 새알도 줍고 나무열매도 따 먹고 산이 온통 놀이터였다. 큰 산이 아닌 뒷동산에는 지금처럼 숲이 우거지지 않았다. 보일러가 없던 시절이라 연료를 산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사이사이는 우리들이 뛰어 놀기 아주 좋은 장소였다. 그날은 평소 우리가 놀던 곳 보다 더 멀리 가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딸기였다. 산딸기가 아닌 밭에서 재배하고 있는 탐스러운 딸기가 바로 코앞에 있었던 것이다. 이게 왠 딸기란 말인가. 우린 탄성을 자아냈다. 우린 배불리 먹고 주머니에 가득히 딸기를 담아 왔다. 아무 죄책감 없이 배터지게 먹었다. 며칠 후 딸기가 또 먹고 싶었다. 딸기를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입안에서는 침이 고여 참을 수가 없었다. 몇몇 친구들과 의기투합 그곳으로 갔다.


밭고랑에 들어가 넝쿨을 헤치고 나니 주렁주렁 매달린 딸기는 아주 많았다. 입에다 마구 넣었다. 가져간 봉지에도 담았다. 그 순간 주인이 나타나 선배를 낚아챘다. 나와 친구는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멀리 갈 수가 없었다. 선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 뒤에 숨어 동태를 살폈다. 빨리 오라고 선배는 소리를 질러댔다. 우린 무서웠다. 선배의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주인은 계속하여 협박을 했다. 학교에 연락하여 학업을 중단한다는 말에 겁이 덜컹 났다.       

        

친구와 나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주인은 계속하여 겁을 주었다. 잠시 주인이 방심한 틈을 타서 선배는 도망치고 말았다. 비겁했다. 나와 친구는 주인의 손에 이끌리어 도망간 선배의 집으로 갔다. 선배는 없었다. 선배 아버지만이 방안에 누워 있다가 우릴 보고 깜작 놀라 무슨 일이냐고 했다.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 우린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다행히 주인은 훼손된 딸기에 대하여 배상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학교에도 알리지 않았다. 천만 다행이었다. 그 이후 딸기만 보면 그 생각이 나서 쓴 웃음을 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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