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다시 태어난 고들빼기 김치

말까시 2007. 9. 18. 14:52
 

◇ 다시 태어난 고들빼기김치


이렇게 비가 마구 내리면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고들빼기가 무럭무럭 잘 자란다. 언제부터인가 바람에 날려 자리를 잡았는지 시골집 마당에는 고들빼기가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처음에는 한 두 개가 자라더니 지금은 마당 전체로 퍼져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시골에 갈 때마다 겉절이를 해서 먹으면 처음에는 씁쓰름하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특유의 개운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여름 밥맛이 없을 때 또한 느끼한 고기를 먹을 때 곁들여 먹으면 쓴맛과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우는 데는 최고이다. 


대지가 150평정도가 되니 50평정도의 건평을 제하고 나면 100평정도가 마당이다. 옛날에는 마당에서 재미나는 놀이도 하고 가을걷이로 수확된 알곡을 건조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많고 많던 시골사람들이 떠난 그 자리는 마당으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텃밭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점점 면적이 늘어나서 오가는 통로를 제하고 나면 마당 전체가 텃밭으로 이용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시사철 마당에서 자라나는 채소는 자급자족하고도 남아서 5일 장날 읍내에 내다 팔아 생필품을 구입하는데 충당하고도 약간 남는다고 했다.


시골에 내려 갈일이 있어서 어머니에가 전화를 했다. 힘드시겠지만 마당에 널려 있는 고들빼기를 조금 캐어서 김치를 담그도록 부탁을 했다. 고들빼기김치를 담아보지 않았다고 하면서 맛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김치 담그는 방법이 뭐 다른가. 그냥 소금에 절여서 깨끗이 세척 한 다음 갖은 양념을 버무려 항아리에 넣어 숙성시키면 맛있는 김치가 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짜지 않게 담도록 신신 당부했다. 맛있는 고들빼기김치를 맛볼 생각을 하니 벌써 입안에는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바람을 가로 질러 휭 하니 고향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삼겹살과 소주를 준비했다. 고향마당에 도착해보니 이미 삼겹살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해가지고 어둠이 내리어 시골의 마당은 시원하면서 공기 또한 아주 상쾌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구워 먹는 삼겹살의 맛은 천하일품이었다. 곁들여 마시는 소주 맛 또한 일전에 전혀 느껴보지 못한 감칠맛이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랐을 때 문득 고들빼기가 생각났다. 말하기가 무섭게 어머니는 냉장고에 고이 간직해놓은 고들빼기김치를 꺼내왔다. 검은색을 띤 고들빼기김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줄줄 흘렀다.    


벌컥벌컥 마신 소주에 목이 말라 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수돗물을 틀어 한 모금 마시고 본격적인 술판이 시작되었다. 노릇노릇 잘 익은 삼겹살 한점을 고들빼기김치에 둘둘 말아 입안에 넣었다. 오물오물 턱에 힘을 주어 씹었다. 그런데 쓴맛이 입안을 가득 매우더니 갑자기 짠맛이 입안에 쫙 퍼졌다. 싱겁게 담그라고 당부를 했건만 젓국을 너무나 많이 넣어 버린 것이다. 어머니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나이가 들면 귀도 어둡고 눈도 침침하고 맛도 모른다고 하면서 안타까워했다. 고들빼기에는 더 이상 젓가락이 가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술 맛은 최고였으며 평소주량 두 배를 먹었음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서울에 도착, 고들빼기김치를 수돗물에 세척하여 물기를 뺀 다음 풀을 끓이고 멸치액젓과 마늘, 생강, 깨소금, 꿀, 고춧가루로 양념을 하여 다시 담았다. 이삼일 지나고 나니 알맞게 익어버린 김치의 맛은 진정 고들빼기김치의 특유의 향을 내면서 씁쓰름한 맛은 그 어떤 반찬보다도 나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다시 태어난 고들빼기김치는 아침저녁 반찬으로 빠지지 않고 날마다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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