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어둠속에 핀 꽃

말까시 2007. 7. 2. 21:32
  

◆ 어둠속에 핀 꽃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지면 하나 둘씩 건물 안에서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각자 제 갈길 가는 거겠지만 빠른 걸음과 느린 걸음, 걸음도 천차만별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일일이 살펴 볼 수는 없지만 유심히 바라보면 걸음걸이에도 아주 많은 특징이 있다. 걸음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 걸음 속에 숨겨진 의미가 무엇인지 일찍이 그런 것을 분석해놓은 책을 본적은 없다. 학교 다닐 때 교련교육을 받을 때하고 사교춤 교재에서 발걸음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 내가 본 걸음의 전부이다.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발걸음 중에서 어느 걸음이 어둠속에 핀 꽃을 꺾을 수 있는지 두 눈 크게 뜨고 따라 가보기로 하자.


칠 흙같이 어두운 밤 불빛하나 없는 시골산골 오지의 어느 하천의 뚝 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갈대가 움직이는 아주 작은 자연의 소리이다. 움직이는 것들이 사라진 후로 산천이 조용한데 간간이 들려오는 풀벌레소리만이 고요한 밤의 적막을 깬다. 은밀한 사랑을 나누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초롱 한 별빛은 사랑을 훔쳐보는 재미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끔 흘러가는 구름이 훼방을 놓지만 보고자 하는 의지에 더욱더 반짝인다. 인기척에 놀란 개구리는 비릿한 오줌을 갈기고 저만치 달아난다. 갈대숲에서 곤이 자는 여치는 선남선녀의 사랑에 끽 소리도 못하고 압사 당하고 만다. 뜨거운 사랑 앞에서 꺾이어진 갈대는 세월이 가면 다시 일어나 꼿꼿하게 살아나겠지만 압사 당한 여치의 영혼은 누가 달래주나. 인간에게는 아주 달콤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치에게는 삶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의 날이기도 하다. 인간의 사랑이 자연에게 아주 치명적인 슬픔을 안겨준 그날, 선남선녀는 마을 어귀에서 하천 뚝 방까지 사뿐히 걸어왔다. 아무도 모르게 어둠속에서 걷는 걸음이 보일 리는 없겠지만 상상해보아라. 가벼우면서 얼마나 경쾌한 발걸음인가. 그 순간 어둠속에서 핀 꽃은 불꽃이 되어 하늘높이 올라갔다.  


갑자기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마구 뛰어간다. 도깨비불이 나타난 것이다. 지금이야 시골에도 가로등이 있어 대낮처럼 밝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우리 어린시절에는 해가지면 바로 암흑이었다. 바로 하천 뚝 방, 갈대가 무성한 곳에서 둘만의 사랑이 불타오를 무렵 갑자기 나타난 불빛에 놀라 나자빠진다. 정채불명의 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우린 도깨비불이라고 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나는 것이 사람의 본디 습성이 아닌가. 도망가는 발걸음 상상해보아라. 금방 좋았던 감정은 온대간대 없고 마음만이 급할 뿐이다. 하지만 그 불은 도깨비불이 아니요 인간의 장난에 의하여 만들어진 불빛이다. 도깨비불에 놀랐건 그날 이후로 선남선녀의 사랑은 나날이 부풀어 올라 제아무리 황우 장사라 하더라도 붙어버린 마음을 떼어 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장가를 가고 시집을 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 슬픔이다. 남몰래 한 사랑의 대가가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평생 아물지 않는 고통을 안고 산다. 무너진 사랑 앞에서 외쳐본들 불러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빨리 잊어야 하는 것이 상책인 것을... 지우고자 하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그 옛날 풋풋한 사랑은 아름다운 추억인가 잊어야 할 산물인가, 누구도 명쾌히 답을 못내리는 것을 보면 어둠속에 핀 꽃은 꺾지 말아야 할 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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