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생명을 이어가는 단비

말까시 2007. 2. 9. 09:07
 

겨울비가 내린다. 겨울 가뭄으로 건조주의보가 발령되어 노심초사 산불위험이 많았는데, 촉촉이 내린 비로 겨울가뭄이 해갈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연일 포근한 날씨 덕에 내린 비가 얼어붙지 않고 그대로 땅속으로 스며들어 빙판길은 모면하였다. 겨우내 쌓였던 길거리 먼지와 거무티티한 건물들이 이번 비로 말끔하게 정리되어 보기가 매우 좋다. 안개만 거친다면 하늘도 맑고 깨끗하여 저 멀리 아파트 브랜드가 선명하게 보일 것 같다.


매서운 칼바람 앞에 얼어 죽을까 솜바지에 오리털 덧저고리를 두툼하게 걸쳐 입고 넘어질라 종종걸음에 잔뜩 움츠린 도시의 서민들, 한줄기 빗방울에 희망의 나래를 펼쳐본다. 길거리 노점상들 하늘의 횡포에 약간은 짜증이 나지만 영상의 포근한 날씨 덕에 깡통난로 연료비가 줄어 굳었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질에 힘없이 무너지는 좌판의 물건들 아까워라 잡아채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허공에 먼지 일뿐, 격한 마음에 뭉텅한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멈출 줄 모른다.


빗방울이 사라지고 잘게 부서진 물방울은 안개로 변해버렸다. 시야가 흐리지만 매연은 아니다. 다쳐 있던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을 사무실가득 담아 보니 여기저기 상큼하다고 이구동성이다.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실라 덩달아 커져가는 콧구멍은 평수가 해골산에 사는 킹콩 못지않다. 질퍽거리는 거리에 흙탕물이 튈지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주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주말은 쉰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그냥 좋다. 움직일 힘만 있다면 주말의 크지 않은 작은 시간 하나 쪼개어 자연 속에 푹 빠져보는 것도 땡전 한 푼 없이 즐길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주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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