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고 온 동내가 떠들썩한지도 꽤나 지났다. 그런데 날씨는 여름인 듯하다가 금시 찬바람이 불고 우박이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친다. 허름한 봄옷 찾아 입었다가 뼈 속 깊숙이 파고드는 봄바람에 장롱 깊숙이 넣어 두었던 외투를 다시 꺼내 입어야 하는 일이 반복 되고 있다. 잠시 왔다가는 봄이란 놈의 횡포가 예년에 비해 심한 것을 보니 부동산광풍에 기가 꺾인 서민 못지않게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봄의 불청객, 이 황사란 놈 때문에 맑아야 할 서울 하늘이 안개 낀 것처럼 늘 뿌옇다. 가끔 봄비가 내려 맑은 하늘을 볼 수가 있지만 이는 잠시뿐이다. 황사와 함께 불어오는 북서풍에 모처럼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릿결이 제 멋대로 헝클어져 짜증이 두 배다. 건조한 바람이 얼굴표면의 수분을 몽땅 빼앗아 가버리는 바람에 곱게 화장한 파운데이션이 각질처럼 들고 일어난다. 바람의 여인들이 데모할 일이다.
봄의 대명사라라고 하는 벚꽃,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대표적인 곳으로 진해 벚꽃놀이를 으뜸으로 쳤다. 하지만 지금은 여의도 윤중로를 비롯하여 아주 많은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벚꽃이다. 좋다하면 너도 나도 따라 하다보니 아파트 모퉁이에 핀 벚꽃 몇 구루에 온 동내사람들이 난리법석이다. 자그마한 축제라도 하듯 막걸리 한잔에 흠뻑 취한 여와 남은 하나가 되어 웃고 즐기는 사이 커져가는 소음은 아파트 동과 동을 돌아 멀리 퍼져나간다.
만물은 봄이 왔다고 땅속에 있는 수분을 빨아들여 겨우내 매 말랐던 가지마다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덩달아 솟아나는 새싹들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듯 어김없이 봄을 알려주고 있다. 새싹의 푸름에 반했는지 어린이 놀이터에도 유난히 애들이 많다. 즐거움에 깔깔거리는 소리 또한 봄바람을 타고 아파트 꼭대기 층까지 또렷이 들린다. 생기나는 일이다.
새 생명은 봄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는데, 하늘아래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의 가슴팍에는 아직 시베리아 벌판 못지않게 찬바람이 불고 있다. 자연은 해마다 피고지기를 반복하여 아름다움을 두 배로 승화시키지만 인간은 하루에 한번씩 피고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소리 없이 지쳐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남을 시기하고 태클을 걸어 얻으려고 하는 작은 욕망은 눈 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그 욕망이 커지면 거질수록 얼굴에 쓴 가면은 점점 흉물스럽게 변해만 간다. 아기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영력하다.
우주에서 본 인간은 하늘아래 아주 작은 점에 불과 한 보잘것없는 것인데, 앉은자리가 조금 변했다고 천하를 얻은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을 보면 개가 웃을 일이고 원숭이가 손 벽을 칠일이다. 겸손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이 오직 욕망만이 넘쳐흐르는 그들의 얼굴에는 꽃피는 봄이 언제 오려나,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