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배란다 신세가 된 막걸리

말까시 2017. 2. 8. 15:28

◇ 배란다 신세가 된 막걸리 

 

어제는 하루 종일 바쁜 일과를 보냈다. 회사나 가정일 모두 꼬인 실타래를 푸느라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아내와 카톡을 수십 번 하고 나서야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퇴근 무렵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마트에 들러 막걸리 두통을 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낸 아내는 “자기 좋아하는 술 사 왔다. 어서 앉아”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사온 막걸리는 우선순위에 밀려 배란다 신세가 되어 버렸다.

 

며칠 전에 차를 하나 뽑았다. 아내의 차가 경차고 연식이 너무 오래되어 안전 문제로 늘 걱정이 앞섰다. 아내는 주차하기 편하고 고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름 적게 먹는다고 경차를 고집했다. 그러나 브레이크 경고등이 들어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가까운 카센터가 가보니 제너레이터가 고장 나서 배터리 충전이 안된다고 했다. 중고 재생품으로 갈았지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워낙 오래된 차라 하나둘씩 고장 나기 시작하면 것 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 새 차를 뽑자고 했다. 며칠을 고민하던 아내는 긍정의 손짓을 보내왔다. 몇 군데 대리점을 다니면서 시장조사를 했다. 가져온 카탈로그를 펼쳐들고 설명하며 설득했다. 차를 직접 보지 않고는 결정할 수 없다는 아내는 날 잡아 같이 가보자고 했다.

 

안전을 위해서 SUV로 결정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저렇게 커다란 차를 어떻게 운전하나요" 고개를 절래 흔들며 극구 사양한다. 아들을 동원하여 설득 작업에 돌입한지 3일 만에 백기를 든 아내는 비상금을 털어 보태 달라 한다. 차를 사면 나 역시 가끔 빌려 탈수 있겠다 싶어 지원하기로 했다. 아들도 새 차에 대하여 군침을 흘렸다.

 

이제 중고차를 매각하는 순서가 남았다. 대리점에서는 착한 딜러를 소개해준다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중고차 시세를 알아보았다. 워낙 오래된 경차라 시세가 형편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 중에 아내의 직장동료가 사겠다며 적극적으로 달려든다고 했다. 아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났다고 반대를 했다.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고 아주 저렴하게 매각하기로 했다.

 

이전등록 서류를 구비하여 넘겨주었다.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는 것을 확인 한 후 차를 넘겨주려 했는데 구 번호판을 새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에 차를 넘겨주고 말았다. 이삼일 이 지났는데도 이전이 안 되었다. 알고 보니 보험도 안 든 차를 몰고 카센터가 다니며 고장여부를 검사하고 다닌 것이었다. 이미 돈거래까지 끝났는데 수리비가 많이 나온다며 계약파기를 선언했다. 어이 상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루 종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제삼자가 같은 금액으로 인수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딱 잘라 말했다. 두 배를 달라고, 무보험에 차는 남의 손에 있고 가져와도 주차할 곳도 마땅찮아 결국 십만 원을 더 받는 것으로 매매를 성사 시켰다.

 

새 차를 뽑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중고차를 매각하기까지 속을 썩이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안 아내는 미안했던지 막걸리를 사와 기분전환을 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내가 사온 막걸리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무거웠던 머리가 가벼워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아내와 난 “정에 이끌리어 일을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신중을 기하자"라고 다짐을 하고는 집 떠난 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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