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고구마 캐던 날

말까시 2015. 11. 3. 10:03

 

◇ 고구마 캐던 날

단풍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가로수 잎도 떨어져 가루가 되었다. 잔바람에도 날린다. 억새꽃이 탐스럽다. 솜털처럼 하얀 억새꽃은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한다. 푸르고 푸르렀던 잡초도 빛을 잃고 시들었다. 담쟁이는 가던 길 멈추고 떨어지려는 잎 하나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른 길고양이는 부러움이 없어 보인다. 화려했던 가을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모든 것이 풍성한 가을, 산짐승들이 곡식을 마구 해치고 있다. 시골텃밭에 자라고 있는 고구마가 이상이 없을까. 수확을 해야 하는데, 봄에 밭을 갈아엎어 고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어 고구마를 심었다. 그동안 엄마가 손수 심어 가꾸었었다. 이제 연세 드시고 몸이 성한 곳이 없어 일을 할 수가 없다. 틈나는 데로 자식들이 내려가 가꾸어야 한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형제들이 먹을 만큼은 된다.

새벽 밥 먹고 집을 나섰다. 뻥 뚫린 고속도로에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차들은 신났다. 날씨가 차가운가 보다. 꽁무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는 얼어 수증기로 변했다. 아직 영하의 날씨는 아닌 것 같은데, 잠시 내려 호호 불어본 결과 입김 역시 눈에 보인다. 도심 속과는 판이하게 다른 날씨, 산골에는 겨울이 온지도 모르겠다.

 

 

고향의 하늘 아래 이르렀을 때 해가 보였다. 들판의 잡초위에는 서리가 내렸다. 밤새 영하의 날씨가 만들어 낸 진풍경이다. 텃밭으로 바로 직행했다. 형님과 누님은 이미 도착하여 고구마 캐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막내인 나는 미안했다. 늦게 도착한 나머지 열심히 삽질을 했다. 탐스럽게 자란 고구마는 깊숙이 찍어 올리자 주렁주렁 매달려 올라 왔다. 비료도 주지 않고 가꾸지 않았지만 고구마는 씨알이 굵었다.

큰 것 작은 것 구별하여 박스에 담았다. 열 박스 남짓 나왔다. 삼형제가 두 박스씩 나누고 가장 큰 것은 시골부엌에 보관 했다. 호박고구마, 밤고구마 한 박스씩 트렁크에 실었다. 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무도 다섯 개 뽑았다. 엄마가 따놓은 호박도 챙겼다. 이것저것 쟁여 넣고 보니 바퀴가 주저앉았다. 먹거리들로 빈틈없이 가득한 트렁크 안을 보니 뿌듯했다.

 

고구마를 정리 하고나니 해가 서산마루에 있었다. 저녁을 먹어야 했다. 캠핑분위기를 내기위해 마당에 상차림을 했다. 구들장으로 사용했던 검은 돌을 불판으로 사용했다. 열전달이 느린 돌 판은 쉽게 뜨거워지지 않았다. 이십 여분 불을 지피자 열기가 올라왔다. 돼지기름을 발라 표면을 닦아 냈다.

아무리 오래 구워도 타지 않은 불판은 목살을 은은하게 구워 냈다. 노릇노릇 익은 고기는 지친 몸에 원기를 불어 넣었다. 어둠이 내리자 손발이 차가웠다. 불이 있는 곳으로 물려든 형제들은 수북이 쌓인 고기를 다 먹을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술을 못하는 맹물파들도 고기 맛에 홀리어 약주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의 만찬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맛은 그 어느 것에 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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