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다.

말까시 2012. 11. 14. 15:17

 

 

 

◇ 총 맞은 것처럼 가슴이 먹먹하다.

 

 

 

 

비바람이 몰아쳐 계곡을 훑고 능선을 넘어 사라진 후 낙엽은 바닥에 수북이 쌓여 산길을 감추었다. 작은 바람에도 뒤집어지고 굴러가 부서져 날아가 곤두박질친다. 높이 솟은 가지는 잎을 다 버리고 부는 바람에 맥없이 떨고 있다. 푸름을 자랑했던 억새, 갈대, 잡초도 바싹 말라 누렇게 탈색되어 스산하다. 옹벽을 타고 올라 길고 긴 생명을 이어가던 넝쿨 식물도 가느다란 줄기만이 줄줄이 매달려 애처롭다. 새벽 산책로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도심 속 깊숙이 겨울이 몰래 다가와 매복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가을은 낙엽 따라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집안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수능이후로 딸내미에게 말을 붙이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가채점결과 생각한 것보다 적게 나온 것 같다는 딸내미의 얼굴에 며칠째 미소를 볼 수가 없다. 덩달아 아들놈도 말이 없다. 아내는 어떻게 대책을 새워야 할 것 아니냐고 달달 볶는다. 무슨 대책이 있단 말인가. 성적에 맞추어 어딘들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침통한 표정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딸내미에게 욕심 부리지 말고 몇 군데 남아 있는 논술시험에 최선을 다하라고 주문을 해보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좀처럼 잡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아침에 헤어지면 오밤중에 나타나는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수능이 끝났다 한들 쉴 틈이 없다. 논술준비에 면접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 수험생들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름대로 충분한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적 제약이 따르고 또한 의기소침한 딸내미는 입을 열려 하지 않는다. 결과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 수시에 자신이 없다는 딸내미, 정시는 더더욱 좁은 문이라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이일을 어찌 한단 말인가.

 

수능이 끝나고 여기저기 전화가 많이 온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물어보는 사람도 많다. 괴롭다. 딸내미 본인도 전화를 받을 때마다 화를 내지는 않지만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무어라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월래 난 별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특별히 강요하는 것도 없다. 가득이나 심난한 요즈음 아들놈이 학원을 끊었다. 배울 것이 없다는 아들놈은 낭비라 한다. 그럼 아들은 천재란 말인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진학에 대하여 문제를 풀어 보려고 심사숙고를 하고 있는데 안경 넘어 눈에서 저절로 눈물이 떼구루루 흘러 내렸다. 재빨리 손으로 훔쳐 감춰보려 했지만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진 눈물은 지인들의 시선에 딱 걸리고 말았다. 창피하기도 하고 내 마음이 이렇게 약해진 것이 화가 치밀어 올라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고 싶었다. 많은 위로의 말을 들었지만 편치 않은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아빠! 나 재수하면 안 되나요.” 딸내미는 맥 빠진 소리로 물어본다. “절대 아니 되옵니다. 재수는 SKY애들만이 하는 것이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마지막 최선을 다해 합격하기 바란다. 분명 길이 있으니 걱정 말라" 하고 마음을 달래주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불안한 마음은 온가족을 괴롭힐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귀동냥을 하고 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떳떳하게 살아 갈 수 있는 날은 요원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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