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표정
비가 내린 풍경은 너무너무 싱그럽다.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간 빗방울은 대지를 흠뻑 적시었다. 푸석한 땅에 수분이 공급되자 꿈틀대는 생명의 씨앗들이 껍질을 벗고 손을 내밀었다. 우산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잰걸음으로 내달렸지만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아스팔트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부서지고 뭉치고 흩날리어 열기를 빼앗아 갔다. 한줄기 쏟아진 비바람은 무척이나 바쁜 도시의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아이들의 얼굴에 활기가 넘쳐흘렀다. 성적에 대한 중압감에 밤을 낮 삼아 무섭게 공부했던 지난 며칠 동안의 고통에서 해방된 그 마음, 익히 거쳐 온 길이었기에 그 홀가분한 마음을 알만하다. 만세삼창을 부르고 그동안 못했던 게임, 먹고 싶은 것들, 가고 싶고 만나고 싶었던 친구들을 생각하느라 머리는 복잡하게 얽혀 있을 것이다.
고삼 딸내미와 고일 아들놈과의 표정은 사뭇 다르다. 무표정한 딸은 전후의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다. 며칠 동안 고민하여 풀어낸 문제에 대한 난이도 및 정답에 대하여 다시보고 검토를 거쳐 분석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에 반하여 아들놈은 시험이 끝난 후 싱글벙글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해 있다. 성적의 결과에 대하여 별로관심이 없는 듯 컴퓨터에 열중하고 있다.
“시험 잘 보았니?” “별로”
딸은 힘없이 한마디 던지고는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마음이 홀가분하겠다.” “뭐가 홀가분해 난 별반 다름이 없어”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의 길을 걷고 있는 고삼학생들에게는 중간고사가 끝났다 한들 해방감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성적의 결과에 따라 잠시 위안을 삼을 뿐 수능을 마치기 전까지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면서 일어난 딸은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책가방을 챙겨 독서실로 직행했다.
“시험 잘 보았니?” “잘 본 것도 있고 망친 것도 있어, 하지만 기분은 짱이야”
아들놈은 연신 자판을 두들기며 나의 질문에 성실하게 응대했다. 모니터에 나타난 그림들은 빠르게 장면이 바뀌었다. 무척이나 빠른 손놀림은 그림을 산산조각내고 날려 보냈다. 반쪽만 보이는 얼굴을 보니 신들린 사람처럼 안면근육이 마구 움직였다. 가끔 아싸!! 하고 추임새도 흘러 나왔다.
그동안 시험 보느라 고생한 아이들을 위해 아내는 연신 무엇인가 지지고 볶고 무치기를 반복했다. 냄비에서는 무엇인가 끓고 있는지 수증기를 맹렬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구수한 냄새는 아들놈의 코를 실룩거리게 했다. 입맛을 다시며 게임에 열중하면서도 가끔 주방을 힐끔힐끔 쳐다보곤 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밥상에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안주거리들이 즐비했다. 나의 취향과 별반 다름이 없는 아이들은 밥한 공기를 뚝딱해치우고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하는 일과 사는 방법이 각자 다른 가족들은 저녁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중간고사 덕에 모처럼 함께한 만찬에 대화는 많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
'삶의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버이날 우린? (0) | 2012.05.08 |
---|---|
시험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난 아이들 표정 (0) | 2012.05.03 |
단식투쟁(2012. 5. 4. CBS 손숙 한대수 행복나라 사연소개) (0) | 2012.05.01 |
애간장을 태운 아날로그 TV (0) | 2012.04.20 |
내사랑 019 (0) | 2012.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