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식투쟁
5월을 신록의 계절이라 한다. 강한 햇빛과 물길 따라 오른 영양분은 이파리를 파릇파릇 살찌워 회색빛을 감추어 버렸다. 녹음이 우거진 숲속 흙더미 속에는 음지식물이 싹을 틔우느라 야단법석이다.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 덕분에 새들은 배불러 신났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을 보면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나 보다. 바싹 마른 논바닥에 물이 들어가 생명을 불어 넣으면 물방개, 미꾸리, 우렁이도 제 모습을 들어 낼 것이다.
밖에는 봄이 가고 여름이 달려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데 집안에는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며칠 전 저녁식사를 하면서 음식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고집쟁이 아내와 개성이 강한아들놈, 얼음장처럼 차가운 딸내미가 합세하여 공격하는 바람에 완전히 바보가 되어야 했다.
보다 맛깔스런 상차림을 위하여 다 같이 노력해보자. 뭐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아내는 기분이 상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버럭 화를 냈다. 말다툼이 지속되는 동안 사이사이 끼어든 자식들 때문에 화가 치밀어 커진 고함소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밥을 거르고 출근을 했다. 엊저녁 일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하여 단식투쟁으로 시위를 한 것이다. 저녁에 술을 거하게 들고 집에 들어갔다. 아내는 없고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꾸지람을 들은 일에 대하여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늦은 저녁 아내는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술을 전혀 못하는 아내의 얼굴이 붉게 물든 것을 보니 하루 종일 편치 않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옷을 갈아입는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외면해버린다. 하하!!! 단단히 화가 났나 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잤다.
다음 날 아침 또 걸렀다. 퇴근 후 친구들과 한잔하고 집에 들어와 바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자정이 넘어 화장실을 가고자 거실에 나와 보니 아내는 소파에서 취침 중이었다. 새벽에 슬며시 들어와 내 옆에 누웠다. 난 미동도 하지 않고 자는 척 했다. 잠을 못 이루는 듯 좌우칼잠을 반복하여 잠자리를 바꾸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샜다.
소리 없이 집을 빠져 나왔다. 지방에 출장을 가기위해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삼일 째 아침을 거르고 해서 인지 별로 배고픔을 몰랐다. 2박3일 동안 지방에서 배터지게 먹었다. 출장 중에 문자도 전화도 없었다. 자존심 싸움은 죽어도 모를 남남처럼 삼일동안 무관심의 연속이었었다.
월요일 저녁 다투기 시작하여 단식투쟁을 삼일하고 출장 갔다가 귀가하니 금요일 저녁이었다. 서먹한 분위기에서 저녁에 차려진 음식을 안주삼아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나니 아내가 예뻐 보였다. 말은 하지 않았다.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전화기를 들고 들어와 받으라 한다. 시골에서 호출이었다.
문중 행사가 있어 토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달구지를 끌고 내달렸다. 단정히 정돈된 선산의 모습을 촬영하여 아내에게 날렸다. “언제쯤 오시나” 짧은 답장이 왔다. 대꾸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아내는 빨래를 하고 있었다. 주부로서의 할 일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미안했다.
빨래를 끝낸 아내는 시장에 가서 먹을 것을 잔뜩 사왔다. 시골에서 가져온 야채와 오리훈제를 살짝 구워 모처럼 만찬을 즐겼다. 술 한 잔을 했지만 아직도 마음이 좁혀지지 않아 정면으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같이 잤다. 아침에 일어나 밥상머리에 있는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숨어 있었다. 단식투쟁은 일주 일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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