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단풍은 벌써 눈앞에 와 있다.

말까시 2008. 10. 11. 01:04

◆ 단풍은 벌써 눈앞에 와 있다.

 

가을은 깊어가고 있다. 한낮의 열기는 아직도 식지는 않았지만 조석으로 제법 찬 기운을 느낄 수가 있다. 설악에서 시작해 백두대간을 거쳐 내장산으로 이어지는 가을 단풍이 지금 어느 곳을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예년 같았으면 방송에서 오색물결의 단풍소식을 자주 내보냈는데 세계경제의 대 공황이라는 굵직한 뉴스들에 밀리어 좀처럼 볼 수가 없다. 남모르는 사이에 이 가을은 서서히 우리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 보다.

 

도시의 가로수 중 은행나무는 가을의 정취를 가장 빨리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나무다. 열매를 감싸고 있는 외피에서 나는 냄새가 고약하지만 노란색의 단풍은 삭막한 도시의 풍경을 잠시나마 포근하게 한다. 잔바람에 날리어 허공을 가르는 노란색의 낙엽은 일정치 않던 시선을 한곳에 머물게 한다. 손끝은 이미 낙엽하나를 집어 들고 생각에 잠긴다. 쓰라렸던 마음이 순간 순화되면서 긴장감이 해소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사계절의 풍광을 수십 번 보아 왔지만 금년 가을 풍경은 왠지 초라해 보인다.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는 경제의 영향도 있겠지만 연초 장밋빛 꿈에 부풀어 있던 희망덩어리가 일순간에 무너질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일까. 연일 쏟아지는 메가톤급 경제 뉴스에 사람도 겁을 먹고 가을 단풍도 놀랐는지 그 빛깔이 선명치가 않다. 기후의 교란으로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듯하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여유롭게 가을 단풍을 즐기기에는 좀 부담스럽긴 하다.

 

비가 오는 듯 마는 듯 대지를 적시었다. 가을 하늘 저편에 먹구름이 피어올라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랑비수준이었다. 빗방울이 조금 더 지속되었더라면 가을단풍이 오색영롱한 빛을 발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비의 영향으로 내일 아침은 오늘보다 차가울 것이다. 신체는 날씨에 적응하려고 표면적을 줄이고자 움츠린다. 공원에 그렇게 많고 많았던 사람과 사람들도 찬바람이 일렁이면서 서서히 줄기 시작한다. 그 자리를 낙엽들이 차지하면서 도시는 다시 회색빛으로 채워질 것이다.

 

지금 이 시각, 자정이 넘었는데도 방송에서는 세계 경제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는 뉴스를 시작으로 금융경색, 끝없이 추락하는 주식과 펀드, 버블붕괴가 우려된다는 부동산 등, 어두운 소식들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런 방법들에 대하여 전문가의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점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가을아! 풍성하기만 했던 가을아! 황금물결 들판처럼 우리들의 마음도 황금물결로 물들게 해다오. 그 것이 돈이 되어 돌게 해다오. 내수시장 침체로 자영업자들 다 죽게 생겼다고 아우성이다. 마음 편히 이 가을 풍경을 만끽해야 할 시간에 마음 조리며 주식전광판에 시선이 집중된 채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들, 탄식이 절로 나온다. 깊은 한 숨에 땅이 꺼질까. 초조한 마음에 연신 품어대는 담배연기만이 가을 하늘 높이 날아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 가을단풍의 향연이 시작 된다. 경제의 먹구름이 빨리 거치어 멋진 가을 풍광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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