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사람을 잡아먹은 그날 밤
술이 술을 먹고 술이 다시 술이 되어 작은 실핏줄을 타고 온몸에 퍼져나갈 때 이상야릇한 짜릿함을 느낄 수가 있다. 하나씩 살아나는 말초신경이 온몸을 타고 말달릴 때, 조용했던 술좌석은 언성이 높아만 간다. 듣고만 있던 순한 양도 말이 많아지면서 행동이 거칠어지고 이내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채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연신 침을 튀기며 토해내는 소리는 듣기가 거북한 소음으로 변해버린다.
둘과 셋이 모여 먹는 술 맛이 최고라고 한다. 둘이 마주 앉은 술좌석은 가끔 이야기가 끊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셋이 한 술은 끊임없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말과 말 사이에 목이 타면 한잔 그리워서 한잔 서글퍼서 한잔 이래저래 퍼마시다 보면 술좌석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린다. 술과 함께 피어오르는 담배연기가 방안 가득 퍼져 가면서 익어가는 홍조 띤 얼굴은 상대방을 약간 흥분하게 한다. 추남이든 추녀이든 술과 함께 어우러지면 미남이요 미녀이다. 손짓 발짓 몸짓에 흐트러진 머릿결이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헝클어진 머리와 함께 꼬여가는 술판은 이제 주체할 수가 없다. 점점 익어가는 술 냄새에 흥에 겨워 부어라 마셔라 술잔의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 소주를 맥주에 말아 먹어보다가 양이 안찬 듯 이내 강도를 더 높여 맥주에 양주를 퐁당 빠트려 폭탄주를 제조한다. 돌려라 명령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술잔은 돌아간다.
물 붓듯 퍼마신 술기운에 희미해진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한군데를 주시하지 못한다. 차오르는 방광을 주체할 수 없는지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향하여 잰걸음을 한다. 손님의 몸짓에 금방 알아차린 종업원은 저기라고 화장실을 가리킨다. 화장실입구에 들어서자 헤매기 시작한다. 여인내의 붉은 입술을 보고 아하 잘 못 들어왔구나 하고 놀란 토끼처럼 도망 나온다. 어렵게 찾은 변기통을 향하여 깔려보지만 조준이 잘 안 된다. 흔들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다. 자꾸만 바닥에 떨어트린다. 신발에까지 튀긴다. 격한 냄새에 거북했는지 결국 변기통을 부여잡고 몸부림친다. 어디서 그렇게 힘이 세어졌는지 변기통이 흔들거린다. 이윽고 거꾸로 차고 올라온 음식물이 “홱” 하는 순간 변기통으로 쏟아져 내린다. 토해낸 음식물은 고춧가루에 범벅이 되어 변기통 사방을 붉게 물들였다. 화장실에 때 아닌 가을 단풍이 들었던 것이다. 오바이트에 온힘을 다해서인지 눈물이 콧물 되어 범벅이 된 몰골은 차마 볼 수가 없다.
세면대의 차가운 물을 뒤 집어 쓰고 나니 정신이 드는가 보다. 바지가랑이에 묻어 있는 오물을 털어내고 손가락을 빗 삼아 머릿결을 훑어 내리니 처음처럼 또다시 새사람이 되었다. 울렁거리는 배속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이야기보따리는 시작되고 늘어만 가는 소주병은 탁자에 어지럽게 널 그러져 있다. “하하 호호” 소리와 함께 어딘가 불편한지 간간이 신음소리도 들려온다. 술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인사불성 괴끼만이 살아 있는 술 마니아들은 삼차를 향하여 동시에 명령을 내린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행은 곧바로 노래방으로 갈까 하다가 단란 주점으로 향한다. 과일 안주에 맥주가 탁자에 내려놓기가 무섭게 벌컥벌컥 마셔댄다. 목이 터져라 불러대는 노래 가락은 음정 박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윽고 도우미가 들어오자 방안의 분위기는 후군 달아오른다. 초점을 잃고 헤매던 눈동자는 번쩍번쩍 빛이 나기 시작했다. 흐느적거리든 몸에 힘을 주어 재빠르게 행동한다. 태어난 곳이 각자 다르지만 행동하는 모습은 어찌 그리 한결 같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누구라고 짝을 지어주지도 않았는데 사람과 사람들은 둘이 하나가되었다. 노래방에서는 보이지 않는 관습법이 있는가보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노래반주에 맞추어 돌고 돌아가는 둘만의 세계는 점점무아지경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날 밤 집에 들어간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술이 사람을 잡아먹어버린 그날 밤, 긁어진 카드전표에는 한달 용돈에 해당하는 금액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후회를 밤 먹듯이 하는 술꾼들아! 정신들 차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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