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사 같은 시누와 올케
시기와 질투로 똘똘 뭉친 시누와 올케를 견원지간이라고 한다. 그만큼 시누와 올케는 사이가 좋지 않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는 시누와 올케는 집안 대소사에 감 나와라 배 나와라 간섭을 하는 바람에 불화의 원흉이기도 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라는 옛말을 보더라도 시누와 올케와의 사이는 누가 누구를 탓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설 명절에는 으레 세배를 하는 풍습이 있다.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웃어른께 큰절을 올리는 것으로 새해는 시작된다. 그리고 나서 성묘를 다녀온 후 일가친척을 방문하여 덕담을 나누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아이들은 용돈을 받아 싱글벙글이고 어른들은 그리운 일가친척을 만나는 즐거움에 하루 종일 미소를 멈추지 못한다.
설날 성묘를 다녀온 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선산을 찾아가 보기로 하고 막 나서려는 순간 손님이 찾아왔다. 외숙모였다. 지팡이를 짚고 외사촌 형의 부축을 받고 대문을 들어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올해 86세로 84세인 시누를 찾아온 것이다. 외삼촌은 진즉에 돌아가시고 아버님 역시 하늘나라로 주소를 옮긴지 오래다. 두 분 다 시골에서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다과 상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외숙모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외숙모는 “누가 엄마를 모시냐"고 반복하여 물어보았다. 엄마는 귀가 잘 안 들린다며 “뭐라고”를 반복했다. 시누와 올케는 전혀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외숙모는 치매 판정을 받고 요양 중에 있다. 과거의 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반면 방금 한말은 저장이 안 되어 묻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엄마는 중풍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하고 가는 귀까지 먹는 바람에 소통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때문에 나와 외사촌 형은 통역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와 외숙모는 참으로 비단결같이 고운 마음씨를 갖고 있는 천사이다. 시누와 올케와의 사이가 부정적 이미지로 잔뜩 칠해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엄마는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궂은일 마다하고 새언니인 외숙모를 도와 살림을 보태는데 일조를 했다. 시집을 와서도 친 정일에 만사를 제쳐놓고 챙겼다. 엄마가 행차하는 날이면 막내인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외갓집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외숙모와 한 번도 말다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외숙모는 아들만 8형제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 2년 터울이라 치면 16년을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힘든 여정을 보낸 것이다. 없는 살림에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런 와중에도 엄마가 중풍으로 쓰러진 이후로 외사촌 형을 대동하고 자주 찾아왔었다. 팔순이 넘은 올케로서 시누를 찾아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귀가 어두운 시누, 침해로 방금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올케, 비록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주 보는 눈빛만큼은 반짝반짝 빛났다. 마음이 아프다. 젊었을 때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보따리 장사로 살림을 일으킨 엄마,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8형제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신 외숙모, 그것을 지켜보는 자식들은 천사 같은 시누와 올케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