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은 청량제이며 소화제다. 태풍 ‘고니’가 물러가고 바람이 잦아지자 하늘이 높고 푸르다. 얼마 만에 보는 하늘인가. 너무나 깨끗하고 파래서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먼지 하나 없이 맑은 하늘에 펄펄 나는 새들이 선명하다. 남산 꼭대기 타워 역시 눈 안에 들어온다. 도봉산과 수락산이 코앞에 다가왔다. 직직했던 도심 속 빌딩들이 각을 잡았다. 더위가 물러간 거리의 사람들이 모처럼 밝은 모습들이다. 그녀의 미소는 황금미소다. 눈가에 잔주름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고기를 굽는 내내 미소를 멈출지 모르는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나이는 제법 들어 불혹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를 위로 묶어 마무리한 머릿결은 검고 반짝반짝 빛났다. 불꽃이 올라 뜨거운 열기가 올라와도 개의치 않고 고기를 굽고 다듬어 자르는 모습은 진정성이 넘쳐났다. 장어 다섯 마리를 구워 자르는 내내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은 그녀는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이런 것이란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열정이 넘쳐났다. 붉은 옷으로 차려입은 여사장은 절색 미인이었다. 나이는 지천명을 넘은 것 같았으나 좀 멀리서 보면 사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탄력이 넘치는 피부는 주름 하나 없었다. 붉은색 옷은 젊어 보인다는 속설이 있지만, 그녀는 색과의 연관성이 없는 듯 했다. 시선이 자꾸만 그쪽으로 쏠리는 것을 보면 미인은 미인인가보다. 근래 저렇게 중후한 멋이 나는 여인을 본 적이 없다. 살짝 웨이브를 넣어 빗어 넘긴 머리는 부드러움을 선사했다. 사장이지만 고기 굽는 일을 마다치 않고 종업원가 다름없이 서빙에 열중했다. 미소 천사 두 명이 홀 안을 걸어 누비며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자 취기 오른 사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종업원 그놈은 무뚝뚝하고 우락부락했다. 알바를 하는 학생인 것 같았다. 단정해야 할 머리는 산발로 지저분했다. 머리를 언제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단정하지 못한 그놈은 서빙 하는 내내 주문한 소주를 까먹기 일쑤였다. 두 여인처럼 웃음을 달고 살면 어디 덧이라도 난단 말인가. 잔뜩 찌푸린 얼굴에는 짜증이 배어 있었다. 알바해서 무엇에 쓰려고 하는지 몰라도 기왕 하는 일 열정을 갖고 하다 보면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 자신의 단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밤공기가 차다. 거하게 한잔하여 열이 날만도 한데, 움츠러든다. 태풍이 냉기를 뿌렸다. 하수구에서 격한 냄새가 난다. 여름 내내 쌓인 오물이 부패를 거듭하다 보니 독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었다. 하수구 청소를 하면 좋겠지만 당장 폭우가 쏟아져 말끔하게 쓸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앞선다. 술기운이 머리끝까지 올라간다. 어지럽긴 해도 기분은 좋다. 더는 걷고 싶지 않았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네온사인 불빛이 어지럽다. 달리는 차 안에서 고개가 흔들렸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지나온 일들이 마구 떠오른다. 오늘은 왠지 즐거운 상상만이 머리를 맴돌았다. 역시 술은 근심·걱정을 잊게 하고 용기를 복 돋아 주며 화기애해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마력을 지녔다. 인류가 발명한 음식 중에 으뜸 중의 으뜸인 것이 바로 술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