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탱이가 호강한 날
요즈음 며칠 술을 마셨다. 음주상태로 자전거를 타지 말라는 질타가 빗발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길은 둔치다. 새벽에 나오는 관계로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달리는 기분은 좋지만 볼 것이 없어 무미건조하다. 지하철은 딴판이다. 여름이라 그런지 젊은 처자들의 늘씬한 다리는 뭇 남성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른 시각임에도 지하철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둔치와는 달리 젊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 스마트폰을 가지고 조물닥 거리며 무엇인가를 한다. 문자를 보내고 새소식을 보느라 정신이 없다. 쓸개 빠진 사람처럼 혼자 피식 웃기도 한다. 엊저녁 과음 했는지 곯아떨어진 청년은 고개가 제멋대로 흔들린다. 옆 사람은 불쾌한 마음을 억지로 참느라 잔뜩 구겨져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하철은 쇳소리를 내며 달렸다.
사람들이 마구 밀려온다. 시내로 갈수록 젊은 처자들이 많아진다. 무더운 여름이 싫은 듯 홀라당 벗고 다니는 처자들은 사내들의 눈을 호강시킨다. 민망할 정도로 딱 들어붙은 바지는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 포위된다. 눈높이는 와이 계곡과 일치한다. 기막힌 우연의 일치다. 빠르게 굴러다니다가 계곡사이에서 멈춘다. 모기가 피를 빨 듯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스캔을 하고는 또 다른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지하철에서 분 냄새를 풍기며 화장하는 여인들은 게을뱅이가 틀림없다. 아이라인을 그리느라 입을 헤하고 벌린 여인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입술을 바르고 나서 껌을 질겅질겅 씹어댄다.
여기 또 게을러터진 여인이 있다. 배고픈 여자들이다. 부지런을 떨었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고 나왔을 것인데 세수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여인들은 지하철 안에서 빵조각으로 아침을 때운다. 목구멍이 바싹 말라 잘 넘어 가지 않는 것 같다. 가방에서 우유를 꺼내 벌컥 벌컥 마셔댄대. 꼴불견이다.
혼잡스런 지하철 안에서 독서를 즐기는 여인들이 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화장하는 여인과 비교를 해보았다. 얼굴이 작았다. 키도 작았다. 얼굴을 보니 옅은 화장에 부드럽게 내려간 턱선이 아름다워 천사를 보는 것 같았다. 책을 가지고 나올 정도면 장거리 출근임에 틀림없다. 역시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의 의상은 화려하지 않지만 세련되었다. 나 그런 여자를 좋아 한다.
아쉽다. 한정거정만 더 가면 내려야 한다. 아직도 양이 차지 않은 눈깔은 빠르게 돌아간다. 구석진 창가에 젊은 부부가 함께 출근하는 그림이 포착되었다. 이상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손을 만지작거리며 가끔 머리도 쓰다듬고 허리선을 감는 등 애장행각이 끊이지 않았다. 부부가 아니라 처녀 총각이 맞는 것 같다. 아침부터 어지간히 급했는가 보다. 데이트 장소로도 이용되는 지하철 풍경은 천태만상이다.
십 분여 머물렀던 지하철에서 저장된 정보는 둔치를 달리는 것보다 몇십배 많았다. 사람들 표정 하나하나에는 철학이 담겨져 있고 옷매무새는 예술적 감각이 숨어있다. 도심 속 올빼미들의 고달픈 표정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새벽 같이 나와 일터로 달리는 지하철 족들은 내려서도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뛰고 그녀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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