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그녀를 감동시킨 선운각 오찬

말까시 2014. 5. 9. 10:39

 

 

◇ 그녀를 감동시킨 ‘선운각’ 오찬

 

 

<선운각 내 영빈관 상차림>

 

 

그녀는 입을 헤하고 즐거워했다. 태양은 뜨겁게 내리 쬐었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 모두 선글라스에 마스크는 기본 얼굴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천은 물이 제법 많이 흘렀다.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일정하게 흐르는 도심 속 하천은 잉어와 피라미 등 물고기들의 천국이 되었다.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 날짐승도 눈에 띈다. 먹잇감이 풍부하니 펄럭이는 새들이 모여 든 것이다. 그녀를 위해 오늘 하루 충성을 다하리다.

 

《초안산》초입에 이르자 아가씨에게서나 날법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눈을 두리번거리며 여인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디서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가 날까. 구불구불 산길을 걷다보니 향기는 더욱 진했다. 아카시아 꽃이 보였다. 앗! 저것이다. 바로 아카시아 꽃향기가 말초신경을 자극 했던 것이다. 아리따운 여인을 찾아 헤맸던 맘을 읽은 것일까, 그녀는 눈을 흘겨 불쾌한 감정을 내비쳤다.

 

내시의 무덤이 즐비한 ‘초안산’은 야트막하여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산책코스이다. 주택가와 가까워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기 딱 좋은 곳이다. 산책로 곳곳에 만들어 놓은 헬스기구는 굳어 있던 근육을 푸는 데 일조를 한다.

 

그녀는 숲속의 향기에 취해 십년은 젊어 보였다. 푸르고 푸른 숲속에 자꾸만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묘하다며 흡족해 했다. 코스가 좋다며 치켜세운 그녀는 이렇게 나온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다음에 또 오자고 했다. 도심 속에 작은 산이지만 아름드리나무들이 즐비한 ‘초안산’은 한 시간 남짓 산책하며 운동하기 안성맞춤이다.

 

‘우이천’에 접어들자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평지를 걷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 지루하기도 하고 그늘이 없어 빨리 지친다. 그녀는 언제까지 가야 하냐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초안산’ 숲속에 십년은 젊어져서 내려 왔는데 ‘우이천’에서 짜증을 내는 바람에 도르아미타블 되었다.

 

계획한 시간을 넘자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매사에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한 사람이 어쩜 이럴 수 있냐며 사기당한 기분이라 했다. 얼마나 더 가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냐며 다그치는 그녀는 무서웠다. 미안하긴 했지만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코스를 잡고 길 안내를 도맡아 충성을 맹세한 이 몸을 생각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따라 오라했다. 지친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우이동 솔밭공원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는 북한산 둘레길이 이어진다. 그늘을 걷는 것에 안도했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것에 또 화를 냈다. 둘레길은 완만했다. ‘우이천’을 걷는 것보다 백배는 수월했다. 그녀는 원수를 보듯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만 가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며 달랬다. 이제 지쳐서 더 이상 못가겠다는 그녀를 부축하여 격동의 시대 비밀요정으로 유명했던 《선운각》에 도착했다.

 

흐르는 땀을 훔치고 영빈관에 들어가니 손님들로 가득했다. 뽕잎가루를 첨가하여 밥을 짓고 등심을 구워 한상차려 나온 음식은 구미를 확 당기었다. 막걸리를 일 배하고 나니 오장육부가 시원했다. 그녀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언제 화가 났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부드러워졌다. 잘 구워진 등심을 상추에 싸서 내입으로 디리미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기쁠 수가 있을까. 한입 받아 씹지도 않고 삼켰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양말, 팬츠, 메리야스를 깨끗이 세탁하여 내 머리맡에 있는 상자에 가득 담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