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애기를 지켜라."
유년시절 이웃동네에 큰 공사판이 벌어졌다.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문화제를 복원하고 주차장을 비롯한 편의시설을 만들기 위한 공사였다. 생전 보지도 못했던 중장비가 드나들고 요상한 물건들이 공터에 쌓였다. 건장한 청년들이 모여 하루 종일 구슬땀을 흘렸다. 공사가 진행될수록 노동자들이 늘어만 갔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말썽이 나기 시작했다. 마을마다 큰 애기를 지키기 위한 비상대책이 마련되었다.
공사장에는 나이 드신 목수도 있었지만 젊은 사내들이 대분이었다. 그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읍내에 나가 탁배기 한잔으로 피로를 풀었다. 술판을 벌이는 것도 마냥 즐거운 것이 아니다. 지겨움을 달래기 위한 방도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혈기 왕성한 사내들은 아기씨가 있는 집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누나들은 도시에 나가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또한 딸내미 혼자 도외지로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 곁에서 잔일을 도우며 신부수업을 하고 있는 누나들은 멋진 사내들의 등장에 가슴이 설랬다.
밤만 되면 아가씨들의 집에는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시끄러웠다. 사내들이 몰려 온 것이다. 집주변에는 뻐꾸기, 부엉이, 종달새가 제각기 소리를 내며 구애의 손길을 뻗쳤다. 낮에도 외출하려면 허락을 맡아야 멀리까지 갈수 있는 엄한 세상에 밤에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어르신은 작대기를 들고 위협을 가해 쫒아 버렸다. 쉽게 물러날 사내들이 아니다. 도망갔다가 다시 오기를 반복하며 약을 올렸다. 밤새 실랑이를 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사내들은 토방에 있는 신발까지 훔쳐가는 횡포를 부렸다.
동네 사랑방에 마을사람들이 모였다. 어떻게 하면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내들을 얼씬못하게 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았다. 마을에 힘깨나 쓴다는 청년들을 모아 사랑방에서 대기를 시켰다. 어둠이 내리자 사내들이 나타났다. 역시 새들의 합창이 이어졌다. 일단 어르신이 나와 좋게 타일렀다. 소용이 없었다. 뒷동산에 올라 지켜보고 있던 전령은 징을 치어 비상을 걸었다. 대기하고 있던 마을청년들은 사내들을 붙잡아 두들겨 팼다. 무릎을 꿇린 후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는 돌려보냈다.
다음날, 동내 앞에는 건장한 사내들이 무리를 지어 나타났다. 동네 청년들보다 숫자가 훨씬 많은 사내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다 죽여 버린다고 했다. 엊저녁 폭행당한 것에 보복을 하러 온 것이다. 워낙 많은 사내들이 마을로 들이닥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공포에 떨고 있던 청년들은 뒷동산으로 피신했다. 어른들도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골목을 돌아다니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사내들은 점령군처럼 호기를 부렸다. 지서에 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전화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내들은 한참동안 소란을 피우고 사라졌다.
그 이후 밤에 나타나는 새들은 없었다. 마을에 평화가 온 것이다. 누나들은 자유롭게 마실을 다닐 수가 있었다. 지금처럼 연애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더라면 사내들과 눈이 맞아 도시로 떠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엄격한 시절 대부분의 누나들은 시골청년과 결혼하여 농사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농촌생활이 지겨워도 별다른 기술이 없어 도시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육십을 바라보는 누나들은 “그때 그놈들을 따라 갔으면 이 고생을 안 하고 잘살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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