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가 어때서
아침부터 꾸물꾸물 눈이 오려나 보다. 금년 겨울은 눈이 자주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 내리는 눈은 많은 불편을 준다. 내릴 때는 보기 좋을지 모르지만 지면에 닿는 순간 통행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후 늦게 눈발이 날린다고 한다. 직업이 무어냐 에 따라 반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세상은 동전의 양면처럼 음과 양의 조화로움이 있어 공평한 것이 아닌가 싶다. 왠지 눈이 기다려진다.
새해가 밝아 오면서 한 살을 더 먹었다. 생일이 도래하지 않아 그대로라 하지만 햇수로 따지면 분명 한 살을 더 먹은 것이다. 이상하게도 50줄을 넘긴 이후로 새벽잠이 없어졌다. 점점 눈이 떠지는 시간이 빨라졌다. 다시 잠을 청하지만 눈동자는 더욱더 초롱초롱해진다. 불을 켜서 책을 좀 볼까 생각도 해보지만 옆에 자고 있는 아내가 싫어 할 것이다.
어둠속에 갇혀 있던 눈동자는 사물의 윤곽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적응해 갔다.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손은 위로 치켜들고 곤이 자고 있다. 사나웠던 모습은 어디가고 순한 양처럼 평온해 보인다. 깊은 잠에 빠진 듯 숨소리가 거칠다. 아직은 젊은가 보다. 아니다. 여인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잠을 더 잘 자는 느낌이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늦게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긴 것이다. 만세를 부르고 주무시는 아내에게 방해가 될까봐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식탁 등에 불을 넣고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을 찾았다.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물 밖에 없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가 거실 구석에 있었다. 물로 깨끗이 세척한 다음 칼로 썰었다. 작은 것 하나 썰어 접시에 담아내니 제법 많았다. 입에 넣고 오래오래 씹어 삼키니 어렸을 때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었던 그 맛이 되살아났다. 물고구마가 아니어서 그런지 좀 딱딱했다. 하나를 다 먹고 나니 아구창이 아팠다.
떨거덕 거리는 소리에도 누구 하나 내다보지 않는다. 나를 뺀 가족은 깊은 잠에 푹 빠져 꿈속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곤히 자는 아들과 딸에게 방해가 될까봐 텔레비전을 켤 수가 없다. 아이들은 문을 반쯤 열어 놓고 잔다. 책을 하나 꺼내들고 읽어내려 갔다. 재미가 없다. 청승맞게 소파에 걸터앉아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또한 못할 일이다. 차라리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 상책이다.
두꺼운 외투를 두르고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새벽공기를 가르고 달린다. 어둠속에 하천은 듬성듬성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영하의 날씨에 얼굴만 내밀고 산책하는 여인들은 나이를 분간할 수 없다. 걸음걸이로 만이 늙고 젊음을 가늠할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리려 해도 지나가는 사람이 보이면 고개가 돌아간다. 흑백의 윤곽만이 망막에 잡힐 뿐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가 없다. 그래도 좋다. 삼십 여분 달리면 직장에 도착한다. 나이 드신 분들 몇 명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부지런도 하여라. 50대 이하는 한명도 없다. 수다의 공간에 합류하여 거들었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떨어대는 수다는 어둠을 걷어냈다.
새벽잠이 없는 것을 보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왠지 서글퍼진다. 갑자기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랫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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