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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더할수록 멀어진 사랑

말까시 2013. 12. 3. 16:56

 

 

◇ 삶이 더할수록 멀어진 사랑

 

기온이 올라가 봄날처럼 따스하다. 모처럼 어깨를 펴고 활개 치는 처자들이 질러대는 소리에 놀란 강아지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간다. 숨어 있던 고양이도 나왔다. 쓰레기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느라 정신없는 고양이는 인기척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배가 고팠나 보다. 추운겨울 봄 같은 날씨에 사람도 짐승도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언제부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음악역시 조용한 발라드 나 트로트 음악이 좋아졌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호프집은 가시나 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고막이 찢어질 듯 크게 틀어놓은 음악 때문에 가지 않는다. 아직도 나이트클럽을 즐기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지만 난 언제 가보았는지 기억이 없다. 저녁을 먹고 나면 거실보다는 안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방해를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안방뿐이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것들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즐겁다.

 

안방에 불을 끄고 텔레비전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기황후>가 방영되고 있었다. <하지원>의 연기에 매료되어 집중하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손에는 옷가지가 들려있었다. 불을 켜더니만 다리미를 찾았다. 웬일일까. 신혼때 한 두 번 하고 말았다. 손에 들려 있는 옷을 보니 아들교복이었다. 물을 뿌려 다림질 하는 아내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각을 잡았다.

 

내가 그렇게 다려달라 했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내가 아들의 교복을 정성들여 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서운했다. 신혼 초 두 줄 세 줄을 만들었던 기술이 일취월장하여 칼날을 만들었다. 아내의 사랑은 이미 아들에게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나보다는 아들에게 더 매력을 느끼고 있는 현상들이 암암리에 나타났다.

 

현관문을 열고 귀가하는 나를 보고는 “왔어” 한마디하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아들이 왔을 때면 “우리<지환>씨 왔어” 하며 쏜살 같이 현관문으로 달려가 호들갑을 떤다. 아들 방에 들어갈 때 혹여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살며시 들어가는데 안방에 들어올 때는 너무 세게 열어 행거가 무너진 적도 있다. 내가 반찬 투정을 하면 도끼눈을 뜨고 달려들지만 아들에게는 “알았어. 인마! 내가 밥 먹고 시장 봐서 낼 아침에는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게” 하고 달랜다. 틈만 나면 쓰레기를 버리라 한다. 심지어 화장실 청소까지 하라는 것을 보면 마당쇠로 전락한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 서글퍼진다.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왠지 서먹하다. 엄마와 아들은 죽고 못 살 정도로 애정표현을 한다. 갈수록 닭살이다. 아들이 성장함에 따라 아버지는 외톨이가 되는 것 같다. 한집에 살아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절간처럼 조용하다. 딸내미는 돈이 필요할 때만 미소 지며 달려들지만 평시는 경계심이 강하고 냉정하기가 하늘을 찌른다. 소통의 부재로 오해를 살 때도 있다.

 

아내의 관심을 나에게 돌릴 수 있는 비책이 없을까. 점점 멀어져가는 사랑을 붙잡아 놓지 않으면 머슴으로 내치고 말 것이다. 점점 초라해지는 남성에 비하여 기가 팔팔 살아나는 여성들은 기개가 하늘을 찌른다. 남성우월주우의가 엊그젠데 전세가 역전되고 말았다. 여성 상위시대 힘 빠지고 돈 없으면 얻어맞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이란 감정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것 같아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