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고 엄마
드디어 도심에도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갔다.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시려 잠시도 걸을 수가 없다. 아무리 칭칭 감아도 눈과 이마는 가릴 수 없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이마가 쪼개질 것처럼 아프다. 요즈음 방한복은 모자가 무척이나 크다. 칼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도록 가장자리에 털이 수북이 박혀 있다. 겨울옷 패션도 아주 다양해졌다. 방한복 한두 벌은 기본으로 요즈음 나오는 옷들은 품이 넉넉하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즈음 결혼식이 한창이다.
처가에 결혼식이 있어서 다녀왔다. 장인형제가 3남3여, 장모형제가 5남4여로 다복한 집안이다. 처가에는 행사가 끊이질 않는다. 거리도 남쪽 언저리로 교통비가 장난이 아니다. 대가족이다 보니 엄청난 인원이 모인다. 만날 때마다 인사를 나누지만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가 없다. 보는 족족 인사를 하지만 갸우뚱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맏사위란 책임감에 행사 때마다 참석하지 만 경제적으로 타격이 크다.
결혼식장에는 하객들로 빼곡했다. 반가워 인사를 나누는 소리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얼굴이 상기되어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아내는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외사촌 오빠가 ‘망구가 다 되었구나’ 한마디 던진 것이 화근이었다. 옆에 있던 처제가 늙었다는 표현을 그렇게 부른다고 덧붙이자 아내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사촌오빠 나한테 찍혔다면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내 나이 오십도 안 되었는데 늙었다니 사람을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본거지, 씨~잉 자기야! 안 그래, 나 주름살도 없잖아”
화가 난 아내는 코를 벌렁거리며 씩씩 거렸다.
피로연장은 운동장처럼 넓었다.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에 식사를 먼저 했다. 원탁에 둘러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데 아들놈이 한마디 한다.
“망고엄마 과일 좀 갖다 주면 안 돼?” “이놈의 새끼도 나를 놀리네, 네가 갔다 먹어라 인마”
갑자기 폭소가 터져 나왔다. 아내는 야채를 한 접시 가득 가져와 먹기 시작했다. 아들은 망고라는 과일을 연상하여 대수롭지 않게 부른 것 같았다. 엄마의 화난 모습에 멋쩍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아들은 몸을 비비꼬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가족들도 키득키득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저녁때 장모와 함께 오리 탕을 먹었다. 한약재를 넣어 우려낸 국물은 구수하면서 진한 향이 식욕을 당겼다. 건강과 미용에 최고라고 자랑을 늘어놓는 처제는 형부 많이 드시라고 하면서 국물을 떠 주었다. 감기 기운이 있어 많이 먹지는 못했다. 아내는 그리도 맛있는지 다리하나를 통째로 뜯고 있었다.
“망고엄마 그렇게 많이 먹으면 뱃살 나오는 거 모르나, 요즈음 다이어트 안 해” “정말 억울해 죽겠는데 자기도 나를 놀리는 거야, 사촌오빠 죽었다. 다음에 보면 할배라고 놀리고 말거야. 웃지 마! 왜들 웃고 난리야.”
식당에는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먹다말고 아내는 내 팔뚝을 꼬집어 비틀고는 뜨거운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처제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막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보고만 있던 장모가 한마디 했다.
“그놈의 새끼는 좋은 말 나두고 왜 망고라 해가지고 우리 예쁜 딸을 화나게 만들고 그래, 도외지에 나가더니 눈깔이 삐었는가보다. 장난꾸러기 같은 놈이라고, 신경 쓸 것 없다. 어서들 먹어라”
독감에 걸려 기력이 없었지만 말은 쩌렁쩌렁 했다. 술을 전혀 못하는 아내는 천불이 나는지 맥주 한 컵을 다 비웠다. 이튿날 상경하는 차안에서 나와 아들은 ‘망고엄마’라고 또 한 번 놀렸다. 충격을 받은 아내는 집에 오자마자 밥도 안하고 얼굴에 팩을 붙이고는 큰대자로 누워버렸다. 그날 저녁은 각자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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