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시’ 이야기
눈이 올 것만 같다. 너무 이른가. 먹구름은 아니지만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잔뜩 찌푸려 있다. 을씨년스런 날 아침부터 파전에 막걸 리가 생각나는 것을 보니 양반은 아닌가 보다. 새벽공기 마시고 바쁘게 나온 세상, 내 것이 아니란 것을 늘 느끼고 있지만 오늘만큼은 하늘이 내 곁에 바짝 다가와 한 움큼 선물을 줄 것 같다. 로또는 바라지 않는다. 맹물이라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는 행운이 온다면 감사히 여겨 만세를 부를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밥맛이 없어 시들시들 힘이 없어 보이면 엄마는 익모초를 뜯어다가 ‘확독’에 갈아 즙을 내어 마시게 했다. 그 맛이 얼마나 쓴지 알고 있는 엄마는 숨겨 놓은 엿을 꺼내 한 토막 입에 넣어 주었다. 밀가루가 범벅이 된 엿은 뜨거운 열기에 녹아 흘러내릴 듯 했지만 달콤함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이었다. 우물에서 방금 길어온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면 정신이 퍼뜩 나면서 기운이 솟는다. 익모초의 쓴맛이 목구멍을 타고 위장에 들어가 한번 휘젓고 나면 더부룩했던 배속이 가스가 빠지면서 밥맛이 돌아온다. 쑥 들어갔던 눈알이 튀어나와 시력이 회복되면 산과 들로 나가 열매를 따먹고 노는 것에 해가는 줄 몰랐다.
익모초를 먹고 기운을 차린 아이들은 눈만 뜨면 움직였다. 비가 그치고 해가 쨍하니 며칠 대지를 뜨겁게 달구면 저수지로 향한다. 연일 쏟아진 장마로 인하여 저수지는 둑을 넘을 듯 물로 가득하다. 홀라당 벗고 들어가 물장구치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가장자리에서 놀다가 갑자기 깊어진 수심에 허우적대는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물에 빠져 죽은 아이들은 한명도 없다. 허우적대기를 몇 번 하다보면 어느 샌가 물에 떠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여름 내내 틈만 나면 물가에 놀던 아이들은 수영에 달인이었다. 이쪽 둑에서 저쪽 둑까지 누가 먼저 갔다 오나 시합도 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다보면 배가 고프다. 먹을 것을 싸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에는 산과 들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수지에는 주먹만 한 우렁이가 많았다. 저수지 바닥을 발로 써레질을 하다보면 발가락에 우렁이가 걸린다. 거꾸로 물속을 파고 들어가 손으로 더듬어 잡아 올리면 된다. 오랫동안 저수지 바닥에서 자라서 크기가 엄청나다. 여러 명이 잡아 올리다 보면 금방 한 바구니가 된다. 모닥불을 피워 불에 올려놓으면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익어간다. 속살을 빼어 배고픔을 달랬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보면 수중식물인 '말'이 자란다. 수심이 얕은 곳에서 군집을 이루고 잘 자란다. 그곳에 가면 ‘말까시’를 얻을 수 있다. 별사탕처럼 생겼으며 검은 색을 띠는 강낭콩만한 작은 열매이다. 물 밤이라고도 한다. 가끔은 바닥에 발을 잘못디디면 ‘말까시’에 찔려 피가 나는 경우도 있다. ‘말까시’를 깨물어 터트리면 하얀 속살이 들어난다. 속살을 파서 먹으면 맛은 없지만 허기를 면하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매일 같이 밖에서 놀다보면 아프리카 검둥이처럼 변한다. 눈만 뜨면 노는 것에 팔려 공부는 뒷전이었다. 산과 들을 벗 삼아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오솔길도 없어지고 농로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매끈하게 단장되었다. 제초제를 뿌려 논두렁에 풀이 없다. 추억이 담긴 그곳이 상처가 나지 않았을까? 갈 때마다 변해버린 시골풍경에 마음이 씁쓸하다. 환경의 변화로 저수지에 ‘말까시’도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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