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우당탕탕! 천둥소리에 잠이 깼다. 빗소리가 여름 장마처럼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창문을 열고 어둠속에 내리는 빗줄기를 보니 장대비였다. 도심 속의 형상물에 부딪히는 빗소리는 천둥과 함께 고요한 새벽을 난도질 했다. 좀처럼 참을 청할 수가 없었다. 뒤척이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머리는 총명해졌다. 수락산 바위라도 쪼갤 것처럼 내리친 벼락은 동틀 무렵까지 끊이질 않았다. 6시 뉴스가 시작되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루의 일상을 시작했다.
한밤중에 벼락이 치면 잠을 설치게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외부환경에 민감해져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다. 잠자다 업어 가도 모를 아이들이야 천둥번개에 놀라 깨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여 눈을 떴다가도 이내 잠들고 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벌떡 일어나 두리번거리던 아내가 사십대 중반이 되자 잠보가 되었다. 자는 모습 또한 천진난만하다. 항상 두 손을 머리위로 만세를 부르며 주무신다. 잠자리가 험하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면 절대 편안하게 잘 수가 없다. 고이 주무시는 아내를 바라보며 슬며시 손을 넣어 촉수를 움직였더니만 냅다 화를 내며 뿌리친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거사를 치르려다 자손심만 구기고 말았다.
석유기름이 귀한 시절, 해질 무렵이면 저녁을 먹고 일제히 잠을 잔다. 온가족이 안방에서 커다란 이불을 덥고 잠을 자야만 했다. 윗방에는 나락가마니, 고구마 퉁구리 등 각종 먹을 것들로 가득하여 잠자리로 이용할 수가 없다. 서세원이 밤새 들락거리는 윗방은 창고와 다름이 없다. 초저녁부터 자기 시작했으니 실컷 잤다고 생각하여 눈을 떠보면 겨우 자정이 좀 넘는다. 어른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이야 아무리 일찍 잠이 들었다 해도 절대 아침에 깨우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이불을 걷어차야 겨우 일어난다. 눈을 비비고 세숫대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졸기도 한다. 잠꾸러기들이다.
자정 즈음에 눈을 뜨고 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텔레비전과 라디오가 없던 그 시절, 아버지들의 생각은 오직 거시기 밖에 없다. 아이들이 깊은 잠에 빠져 전쟁이 나도 모를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다. 막내를 끌어안고 곤하게 자는 엄마에게 신호를 보낸다. 하루 종일 땡볕에서 일하느라 피곤도 하려마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슬며시 자리를 옮기는 솜씨 또한 민첩하다. 아이들이 깰 새라 입을 틀어막고 엄마 아빠는 사랑에 빠진다. 장남 장녀들은 한번쯤 사랑의 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아무 말도 못하고 자는 척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동생들이 끊임없이 생겼다. 오직 밥심으로만 살아온 부모님들의 정력은 지칠 줄 몰랐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잠만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돌아 댕기는 말이 있지 않는가. 잠자리가 편해야 다음날 개운하다. 자리만이 다가 아니다. 부부의 사랑이 문틈으로 새어 나가 집안을 훈훈하게 데워야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영특하여 눈치가 빠르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면 어둠속에서 이루어진 일들을 그대로 읽을 수가 있다. 밤새 옥신각신 싸우다보면 얼굴에 밭고랑 자욱이 그대로 나타난다. 숨이 헐떡이도록 사랑싸움에 매진해야 한다. 예전처럼 숨죽이며 몰래 할 필요도 없지 않는가. 용광로처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나면 깊게 파인 골판지 얼굴이 CD처럼 고와진다. 불타는 금요일, 일찍 귀가 하여 침대 다리를 분질러 봄이 어떨지? 이참에 침대 바꾸어 보삼삼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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