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 없을까.
시원함도 지나갔다. 차갑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날씨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여름 내내 비를 뿌렸던 회색빛 먹구름은 사라지고 파란하늘 군데군데 옅은 구름이 흰 솜털이 되어 드리워져 있다. 씨앗이 여물고 열매가 단내를 풍기자 날짐승들이 신났다. 아파트 베란다 안전울타리에 매달린 실외기의 날개는 움직임이 없다. 길거리에 나다니는 사람들의 팔소매도 길어졌다. 밤마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가을은 우리의 보금자리에 자리를 펴고 길게 누워 있다.
봄에 싹을 틔어 물과 햇빛을 받아 성장하여 열매를 맺기까지 갖은 풍파를 견뎌내야 한다. 들판의 곡식들이 탱글탱글 익어간다. 커다란 태풍만 없다면 금년 농사는 풍년이 될 것 같다. 새들도 힘차게 날아다니고 하수구에 노니는 쥐들도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가을이 깊어지면 알알이 익은 곡식을 수확하게 된다. 먹을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풍성한 먹거리에 마냥 즐겁다. 영양과다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인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무척이나 고기를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밥상에 고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다른 반찬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살코기만이 있는 고기는 맛이 없다며 적당히 비계가 있는 고기를 좋아한다. 퍽퍽한 살코기보다는 기름이 섞여 있는 고기가 고소하고 부드럽다는 것을 잘 아는 지인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단을 주문한다. 지속적으로 고기를 먹다보니 배는 남산만하고 목살이 두툼하게 올라와 걷는 모습이 미련스럽기까지 하다. 먹고 싶은 욕망을 뿌리칠 수 없는 것 같다.
손발이 트고 코 흘리어 옷소매가 반들반들 할 때 도시로 일찍 나간 동네 아저씨 한분이 모처럼 고향방문을 했었는데 아저씨의 배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에는 모두다 홀쭉이들밖에 없는데 그 아저씨는 배가 두둑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 당시 배가 남산만한 사람은 모두 사장이라 했다. 어렵고 힘든 시절 잘 먹어 살이 통통하게 찐 사람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얼굴색 역시 우윳빛이었다. 그날 밤 그 집에서는 돼지고기를 푹 삶아서 수육을 먹고 있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명절이나 제삿날이 아니면 고기 맛을 볼 수가 없다. 그것도 탕에 몇 점 들어가 있는 고기가 전부였다. 수육을 온가족이 배불리 먹을 정도면 대단한 일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시골을 등지고 도시로 나와 홀로 자취를 할 때도 삼겹살 한번 제대로 구워 먹어 본적이 없다. 가끔 회사에서 회식을 할 때 포식을 하여 이튿날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밥 먹듯이 들락거리곤 했다. 뱃살이 너무나 없어 앉은 자세는 항상 앞으로 굽어 있었다. 얼굴은 광대뼈가 뛰어나오고 턱은 가늘었다. 바지사이즈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반려자를 만났다. 서서히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늘어나는 뱃살은 아니었지만 해가 갈수록 허리는 두꺼워 졌다. 건강검진 결과 적신호가 왔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넘치는 영양분도 줄여했다. 좋아졌다.
배고파 걱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영양이 넘쳐나서 걱정을 하고 있으니 세상만사 새옹지마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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