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장모의 손길에서 다가온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마구 달려오고 있다. 바람도 살랑살랑 훈풍이 불어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아직 두툼한 갑옷을 벋지는 않았지만 내의 없는 옷차림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따스한 햇살은 개구리를 나오게 하고 땅속에서 꿈틀대는 새싹을 밀어 올린다. 겨우내 꺼져 있던 천변음향시설에 소리가 터져 나오자 운동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봄의 전령사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하게 되면 봄은 절정에 올라 상춘객을 밖으로 내몰 것이다.
김장김치에 길들여진 입맛이 변했다. 푸성귀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직 봄을 느끼기에 이르지만 날마다 흘러나오는 수많은 정보는 저절로 봄, 봄, 봄을 외치게 한다. 할인매장의 야채코너에 대파, 쪽파, 상추, 미나리, 깻잎, 부추, 시금치 등 채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제철에 나는 먹거리가 아니다. 향기 나는 봄나물을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재래시장에 나가봐야 할 것 같다.
시골에서 택배가 왔다. 경비실에서 낑낑대고 들고 와 열어보니 쪽파와 시금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박스바닥에 숨어 나중에 발견한 고구마는 크지도 않고 앙증맞게 자그마했다. 검은 봉지에 무엇인가 담겨져 있었다. 깍두기였다. 시골 감나무 아래 묻어놓은 항아리에서 겨울 내내 숙성된 깍두기는 사각사각 신맛이 퍼지면서 달콤한 것이 천하일품이다. 처남이 손수 농사 지어 보내온 표고버섯도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택배 먹거리는 신선함이 듬뿍 들어 있는 명품 중에 명품이다. 당분간 입안이 행복에 젖어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녁밥상이 진수성찬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푸성귀로 차린 밥상은 싱싱함이 넘쳐 났다. 목살을 살짝 구워 시금치, 쪽파위에 올려놓고 된장과 초장을 발라 입안에 넣으니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행복감이 밀려왔다. 표고버섯도 살짝 구워 맛을 보니 특유의 향긋함이 시골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고기보다 야채를 더 많이 먹다보니 밥은 반공기도 먹지 못했다. 술 생각이 절로 났지만 연초부터 시작한 다이어트에 장애가 있을까 싶어 꾹 참았다.
주말에 장모님께서 상경하신다고 한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다가오기 전에 자식들이 보고 싶어 발걸음을 한다는 장모님은 분명 빈손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손에 들고 머리에 이고 어깨에 둘러매고 올라왔던 장모님 오래 연세가 예순아홉이다. 빈손으로 오라 해도 막무가내로 먹거리를 잔뜩 짊어지고 오시는 장모님이 안쓰러워 미안스럽다. 당신께서 즐거워하시니 뭐라 할 수도 없고 맛있게 먹어 주는 것이 보답이 아닌가 한다.
공기의 색깔이 달라졌다. 차갑게만 느껴졌던 공기의 색이 따스하게 변한 것이다. 이렇게 색깔이 바뀔 즈음에 처가 뒷동산 대나무밭에 죽순이 하나둘 보인다. 비가 온 후의 죽순은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30cm정도 자랐을 때 베어다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장을 찍어 먹으면 그 맛 또한 오묘하다. 중국음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죽순은 봄이 오면 미용식으로 즐겨먹곤 했다. 아직은 보이지 않는 죽순이 곧 고개를 내밀 것이다. 장인어른께 부탁하면 한 박스 붙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죽순의 하얀 속살을 생각하니 침이 절로 나온다. 먹거리가 풍성해지는 봄, 나도 몰래 가슴 뛰게 하는 봄, 우리 집의 봄은 장모님 손길에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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