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날 눈(雪) 감옥
새해 벽두부터 한파가 몰아치고 눈이 내리어 길은 온통 빙판이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하천 길 따라 날아보지만 눈 덮인 풀숲에 먹이를 찾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굵은 새들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속을 헤집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쫄쫄 흐르는 강물은 냉기를 뿜어 난간에 고드름을 만들었다. 청명한 하늘은 태양을 그대로 노출, 햇빛을 마구 쏟아내어 눈을 부시게 한다. 금년 한해 맑은 하늘처럼 투명하고 후덕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새해가 밝았다. 아침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어데 가려 했었는데 눈이란 놈이 발목을 잡았다.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있을 것을 생각하니 좀이 쑤셨다. 쉬는 날은 일찍 잠에서 깬다. 전날 늦게 잤음에도 피곤함이 없이 개운하다. 아내는 잠에 취하여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살며시 흔들어 깨웠다. 노발대발한다. 쉬는 날 잠을 푹 자려고 했는데 깨운다고 난리다. 눈이 와서 우리계획 다 틀려버렸다고 귓속말로 전했더니만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내는 잠자리를 고쳐 칼잠을 청한다.
인터넷을 뒤져 상영하는 영화의 제목을 검색했다. ‘라미제라블’ 조조 사천 원이 눈에 확 들어왔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뮤지컬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다시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왜 자꾸 괴로 피냐며 짜증을 냈다. 값도 저렴하고 모처럼 뮤지컬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줄거리를 들려주었다. ‘장발장’ 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인 아내는 화장실로 직행하여 요란하게 물소리를 냈다.
이른 아침임에도 극장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가족단위로 아이들이 많아 소란스러웠다. 매진 일보직전으로 맨 앞줄만이 좌석이 남아 있었다. 눈 때문에 다들 극장으로 몰려 든 것 같았다. 상영관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로 빼곡했다. 뒤에 빈자리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거대한 스크린 바로 앞에서 관람해야 했다.
배고픈 여동생을 위하여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장발장’의 불쌍한 이야기가 대사에 곡을 부쳐 새롭게 다가왔다. 장시간의 상영이었지만 지루함이 없었다. 슬픈 이야기를 처절하게 불러대는 명배우들의 표정에 눈시울이 뜨거울 때도 있었다. 마지막장면, 가진 자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죽임을 당한 선량한 시민들의 핏물이 도시를 붉게 물들인 장면에서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소름이 돋았다. 상영이 종료했을 때 일부 관객이 박수를 쳤다. 전체적으로 내용만큼이나 배경화면이 어두운 것이 흠이었다.
극장 건물과 함께 있는 마트에 들려 찌개용 돼지고기를 샀다. 막걸리 한통도 바구니에 담았다. 술을 전혀 못하는 아내는 막걸리를 보더니만 눈을 흘긴다. 아이들을 위해 포장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새우깡도 한 봉지 집어 들었다. 시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와보니 아이들은 그때까지 꿈나라에 있었다.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전골냄비 넣고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고추장을 풀어 볶았다. 표고버섯, 양파, 김장김치를 넣고 한 번 더 볶아 다시마육수를 부어 팔팔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배가 고팠는지 눈을 비비며 나온 아이들이 식탁에 앉았다. 국물을 많이 달라는 아들, 비개는 싫다는 딸내미의 주문대로 상차림을 했다. 새해 첫날 아점은 이렇게 차려 맛깔스럽게 먹었다. 얼큰한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 켰다. 낮술에 오후 내내 비몽사몽 이리 뒹굴 저리 뒹굴 모처럼 나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