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부시게 화려한 단풍 그냥 보낼 순 없지
풀잎이 빠삭빠삭 마르는 소리가 들린다. 떨어진 낙엽은 없지만 나무에 매달린 이파리들은 푸른색을 버리고 서서히 물들고 있다. 먼저 나온 솔잎도 밤색으로 변해 낙하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산책로에 나온 강아지들도 힘차게 달린다. 뜀박질 하는 사람도 많다. 운동하기 무척이나 좋은 계절이 주는 선물은 현재진행형이다. 금방 흘린 땀방울이 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끈적임 없이 상쾌한 날씨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암시라도 하듯 높고 파란 하늘에 얇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분명 밤사이 두꺼워진 구름은 아침이 되면 빗물이 되어 떨어질 것이다. 힘없이 매달린 입들은 작은 빗방울의 충격에 곤두박질하여 생을 마감하고, 여름 내내 간직했던 포근함을 자랑했던 사철나무도 차가움에 놀라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릴 것이다. 시원했던 바람은 해가 기울면서 서서히 사나움을 들어내고 괴롭힐 준비를 하고 있다.
열매를 빼앗기고 탈진 상태인 나무들은 마지막 남은 잎사귀까지 버리려 한다. 양분을 더 이상 빨아올릴 힘이 없다.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추운 겨울 푸른 잎에 영양분을 보낼 수가 없다. 최소한의 영양분으로 바람이 불면 부는 데로 휘어졌다가 다시 곧바로 세우면 그만이다. 죽은 듯이 살다가 온기를 느끼면 다시 활화산처럼 타오르면 되는 것이다. 자연을 거역하지 않고 묵묵히 이어져 온 곧은 그 마음에 수령이 천년이 넘는 나무도 있다.
출퇴근길을 더듬어 보자. 추위에 민감한 처자들은 전신을 감싸는 외투를 입은 채 잔뜩 움츠린 채 가방끈을 부여잡고 종종 걸음을 한다. 바싹 마른 체격의 남정네들은 두꺼운 콤비를 걸치고 담배연기를 연신 빨아댄다. 뜨거운 남자들이야 아직도 반팔 차림도 있지만 대부분은 노출된 피부를 피복으로 감추어 버렸다. 가로수도 전지를 하여 말끔하게 다듬어 가고 있다. 어둠이 내렸음에도 마지막 남은 은행 알을 주우려고 할머니들은 허리 굽혀 바삐 움직이고 있다. 생맥주 집 앞 노상에서 자리를 펴고 마시던 맥주마니아들도 실내로 사라졌다. 인간은 추위를 피해 재빠르게 대응하고 있었다.
밤길 번화가 후미진 담벼락에 방뇨흔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속이 역겨워 토해버린 오물위에 나타난 그림은 가을단풍처럼 울긋불긋하다. 차가운 밤기운에 바짝 오그라든 방광이 밀려들어오는 폭포수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땀으로 배출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사람일수록 기온이 떨어지면 화장실 가는 것 자체가 귀찮아진다. 활동량이 적어져 가는 늦가을에 멀어져 있어야 할 술병은 가는 곳마다 눈앞에 나타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기온이 변하면서 달라지는 신체의 반응은 신비에 가깝도록 민감하다.
나무처럼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바람이 인도하는 대로 흔들리며 홀가분하게 살수는 없을까. 유혹하는 단풍에 쓸쓸한 마음은 시린 가슴이 되어 대청봉 꼭대기에 올라 있다. 밀고 당기는 마음은 조석으로 바뀐다. 삶의 굴레를 벗어나 훌쩍 떠나 버리면 쩐이 아깝고 그 안에 있자니 마음이 아프다. 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 가을 산속에 들어가 자연이 주는 선물을 듬뿍 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 남녀마음이 조금은 다르다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 앞에 마음 설레는 것은 매일반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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