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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맑은날 아침풍경

말까시 2012. 8. 31. 14:56

 

  

모처럼 맑은 날 아침풍경

 

해가 쨍하고 나타났습니다. 하늘도 파랬네요. 자그마한 솜털구름만이 듬성듬성 떠다니고 있습니다. 살그머니 다가온 실바람이 살갗을 시원하게 하네요. 아직도 짝을 찾지 못한 매미는 최후의 발악을 하는지 목소리 높여 울어대고 있습니다. 아주 멀리 있는 아파트의 이름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더럽고 추한 것들을 태풍이란 두 놈이 사그리 앗아 갔나 봅니다. 이렇게 맑은 날이 죽 이어진다면 과일과 곡식들이 잘도 여물겠지요.

 

오늘 아침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하천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깨끗이 세척된 모래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멈추고 들어가고 멱을 감고 싶어집니다. 반바지 차림의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웃옷을 벗고 조깅하는 사람도 보입니다. 낚시를 금지하는 현수막은 찢기어져 보기 흉했습니다. 엎어져 있던 잡초도 다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잔뜩 살이 찐 쥐 두 마리가 사랑싸움을 하는지 쫒고 쫒기를 반복하고 있네요. 인기척에 놀라 하수구로 쏙들어가 버립니다. 풀벌레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풀숲이 고요합니다. 옹벽을 타고 올라가는 넝쿨식물은 녹색을 버리고 검어져 변신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았습니다. 핸드백을 어깨에 둘러메고 산책로를 따라 출근하는 아가씨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생머리를 뒤로 말아 살짝 동여매고 뒷머리는 그대로 늘어트려 출렁이는 머릿결이 유난히 빛이 났습니다. 짧은 스커트는 무릎이 보일락 말락 펄럭이고 있어 자꾸만 시선이 내려갑디다. 달리던 자전거에서 내려 같이 걷고 싶은 마음은 나만이 그런 건가요. 아닌 것 같습니다. 쌩쌩 달리는 자전거위에 남성들은 힐끗 쳐다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투피스 차림의 출근여인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습니다.

 

고수부지와 하천이 만나는 경계에 돗자리를 깔고 기도를 하는 사람이 보입니다. 하얀 옷을 입고 앉아서 두 손 모아 기도를 하는 여인 옆에는 자전거가 있습니다. 합장을 했다가 벌리고는 양 무릎에 얹어 기를 모으는 듯 미동도 하지 않네요. 점점 거리가 가까워져 얼굴을 보니 할머니였습니다. 이른 아침 갑자기 소름이 돋아납니다. 바싹 말라버린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파이고 머리카락은 비비 틀어져 볼품이 없었습니다. 어딘가 편찮은 듯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 무슨 사연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가속페달을 밟아 냅다 달렸습니다.

 

지천을 지나 샛강으로 들어서니 정면으로 햇살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동쪽을 향하여 달리다 보니 눈이 부시어 앞을 보기가 쉽지 않네요. 반대편에서 양산을 쓰고 오는 아리따운 여인이 보입니다. 백옥 같이 하얀 피부를 간직하고 싶은 욕망 앞에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가 봅니다. 대단한 열정이 엿보입니다. 엷은 하늘색 양산 속에 감추어져 있는 얼굴이 보이지 않아 못내 아쉬웠습니다.

 

샛강끝 무렵 다리 아래 신발을 벗은 아저씨 한분이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옷은 때가 잔뜩 묻어 있고 얼굴에는 수염이 텁수룩하게 길어 있었습니다. 옆에는 소주병이 보이네요. 안주 없이 깡소주를 마신 듯 인기척에도 쿨쿨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불상하기도 하고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생각과 생각은 깊이를 더해갑니다. 지금은 무기력해 보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제기를 하여 보란 듯이 만세를 부를 날이 있기를 간절히 빌어 봅니다. 자전거를 달리며 스캔한 아침풍경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내일도 모래도 쉼 없이 달려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