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50은 예전의 30이야!
물 먹은 나뭇잎들이 파릇파릇 선명하다. 강가에 나온 개들도 신이 난 듯 꼬리를 흔들고 날 뛴다. 숨어 지내던 물오리와 다리가 제법 긴 새들도 먹이 사냥에 여념이 없다. 맑아진 하천에는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거무티티 했던 모래는 깨끗하게 세척되어 빛났다. 배배틀어져 있던 풀잎들도 생기를 되찾아 물을 마구잡이로 빨아들이고 있다. 습기를 듬뿍 먹은 둔치에는 보이지 않았던 생물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일요일 저녁 우리가족은 가까운 음식점에서 회식을 했다. 밑반찬이 별로 없지만 뼈째 썰어 나오는 세꼬시는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별미이다. 초고추장보다는 된장에 찍어 야채에 싸서 입안에 넣으면 고소한 그 맛 정말 술안주로 최고이다. 쌈 싸는 것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 아이들은 생선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그대로 얌얌 잘도 먹는다. 방금 출시된 갤럭시s3에 대하여 아들놈과 이야기 하고 있는데 엽 좌석에서 중년의 남녀가 큰소리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귀를 쫑긋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는 좀 위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면 안 되나. 자기는 모든 일에 끈기가 없는 것 같아. 인내심을 갖고 죽이 되 든 밥이 되 든 끝까지 밀어붙여봐. 지금까지 자기는 5년을 버틴 사업이 하나도 없어. 중도에 포기하는 거 정말 난 싫어. 왜 그래. 내가 백날 박사 할아비를 딴들 무슨 소용이 있어. 아빠의 위상이 어느 정도 서야 아이들도 밖에 나가 활개를 칠 수 있잖아. 우리 한번 다시 시작해보자. 내가 남대문시장에서 양말을 떼어 올 태니 당신 노점한번 해볼래. 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그래.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자기야! 생각해봐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도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야. 비록 실패는 할지언정 실패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시행착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다 밑거름이 되는 거야. 당신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지. 이를 악물고 나의발전과 우리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달려온 것이야. 난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아. 넘어야 할 산도 많고. 난 두려움이 없어. 자기야 지금 50은 예전에 30이야. 늦은 것이 아니야.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무엇이든 해보자. 응! 자기야!"
남자는 간간히 대답만 할뿐 토를 달지 않았다. 연속하여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 기가 죽어 있는 남자는 소주잔만 비워댔다. 그와 반대로 여인은 열정이 넘쳐났다. 소주가 거듭되면서 불그스레한 얼굴로 남편에게 기를 넣어주는 중년의 여인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지만 얼굴이 동글동글 야무지게 생겼다. 눈에서 나오는 광체는 남자의 기를 완전히 제압하고 꼼작 못하게 했다. 가장이 뒤바뀐 것 같았다. 그 여인은 아무리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도 헤쳐 나가 기필코 쟁취할 수 있는 기백이 엿보였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중후한 멋은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갈고 닦고 기름을 쳐야 빛나는 것이다. 남녀가 술좌석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삶의 철학이 듬뿍 담겨 있는 명 강의였다.
식당을 나와 밤하늘 바라보며 집으로 오는데 아들놈이 질문을 한다. “옆에 있던 그 아줌마 왜 남자에게 면박을 주는 거야.” “너도 듣고 있었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뭐 그런 이야기야” 라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의아한 듯 한마디 한다. “아프리카 뭐라고” 나 참 기가 막혀 아들과 나는 박장대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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