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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리 내놔

말까시 2012. 6. 25. 14:48

 

 

◇ 내 다리 내놔

 

 

 

 

 

태양은 저수지의 물을 몽땅 앗아가 버렸다. 그 안에 살던 물고기는 어디로 갔을까. 비오는 그날까지 땅속 깊숙이 들어가 본의 아닌 잠을 자야 할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곳이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 금년 가뭄은 유난히도 길다. 매일 같이 작렬하는 뜨거운 열기는 대지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빨아들이고 있다. 푸석한 땅에는 가느다란 먼지가 무수히 만들어져 날리고 있다. 주말에 빗님이 오신다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금요일 밤 당직으로 날밤을 깠다. 아침은 먹지 않았다. 입안이 깔깔하고 피곤해서 곧바로 잠을 청했다. 점심때 일어나 라면을 끓여 먹고 전철을 탔다. 의자에 앉자마자 졸음이 밀려 왔다. 옆에 있는 총각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머리가 제멋대로 흔들렸다. 옆에 있는 처자도 엊저녁 고된 노동을 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내 머리도 흔들거렸다.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와 이리저리 흔들리는 머리통을 통제 할 수가 없었다. 나를 중심으로 잠에 빠져 있는 세 사람의 머리가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는 바람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인은 키득키득 웃음을 참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쏟아지는 졸음 앞에 황우장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하는 말이 진정 맞는 것 같다.

 

서울변두리 고등학교 운동장에 도착해보니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옆 농구장에는 학생들이 기초체력다지기 운동으로 뜀박질을 하느라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늘나무 아래 친구들이 막걸리 파티를 하느라 내가 접근하는 줄도 모르고 깔깔거렸다. 홍어무침과 사시미, 돼지머리 수육에 묵은지가 조화를 이룬 삼합은 단숨에 막걸리 수십 통을 비웠다. 뜨거운 열기 가득한 운동장에서의 음주는 온몸을 불덩이로 만들었다.

 

두 패로 나누어 족구를 했다. 50줄을 달리는 중년의 나이지만 예년의 몸놀림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헛발질로 자빠지는 친구도 있었지만 잘 짜인 팀워크는 여러 번의 릴레이가 오고간 후에 결판이 났다. 워밍업을 했어야 했는데, 공을 몇 번 차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오른쪽 장딴지 근육에 통증이 밀려와 한발작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강력한 오른발 슛을 하고 땅을 밟는 순간 뒤틀린 근육이 파열된 듯 했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환자가 거의 없었다. X-Ray촬영을 해보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별것 아니라 생각했는데 기브스를 한다고 하의를 벗으라 하면서 부산을 떨었다. 아리따운 간호사 세 명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다리병신으로 만들고는 월요일 다시 오라 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졸지에 목발을 집고 나서야 했다. 나이롱환자라며 잡아끄는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저녁만찬과 시원한 맥주파티까지 참석하고 귀가 했다.

 

아내는 똥그란 눈을 뜨고 놀라 웬일이냐고 물었다. 아이들도 달려와서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별거 아니니 걱정 말라 진정을 시키고 샤워를 하기 위해 반 기브스를 풀었다. 아내의 부축을 받아 시원한 물줄기를 뿌려주고 나니 살 것 같았다. 일요일 집안에서 꼼짝 않고 누워 이것저것 시켰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던 아내가 오후가 되면서 짜증을 냈다. “이거 엄살 부리는 거 아니야” 혹시 움직일 수 있는데 아프다는 핑계로 온갖 것을 시키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어둠이 내릴 때까지 이어졌다. 아프니까 괴로웠지만 아내의 지극정성수발에 모처럼 호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