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대나무(아내)성이 뿔났다.

말까시 2012. 5. 15. 15:24

 

 

◇ 대나무(아내)가 뿔났다.

 

비갠 날 초록의 물결은 선명하여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물을 잔뜩 머금은 나무는 녹음을 빠르게 넓혀 가고 있다. 높이 달아난 파란하늘에 얇은 구름이 매달려 놀고 있다. 뒷동산에 만발한 아카시아 꽃은 진한 꽃향기 만들어 벌․나비를 유혹한다. 유리창에 부닥치어 말라버린 빗물자국은 창밖에 나부끼는 머플러의 끝자락을 흐리게 한다. 살짝 열려진 문틈으로 들어온 바람은 커튼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소란을 피운다. 지천에 널려 있는 생물들은 여름을 빠르게 만들어 가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주방에 있는 아내에게 옷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아니올시다. 하면서 코를 실룩거리며 화가 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수선을 맡긴 사실이 없다고 해서 자기 한데 전화를 했는데 받지도 않고 달리 방법이 없어 그냥 왔다고 했다. 옆에 있는 세탁소에 의뢰 한 것을 여기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하고 오히려 아내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봤다고 한다. 말을 하면서 분이 풀리지 않는지 프라이팬을 박박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엊그제 허리와 기장을 줄이기 위해 수선 가게에 들러 치수를 재고 전화번호까지 메모해주었었다. 수선이 완료되면 문자를 날려준다고까지 했었다. 오래된 일도 아닌데 오리발을 내밀다니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화가 나서 바로 내려갔다. 문이 닫혀 있었다. 허탈했다. 내일은 주말이라 혹시 영업을 하지 않으면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참을 수 없는 울분이 밀려 왔다. 한 벌도 아니고 두벌이나 수선을 의뢰 한 것인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하니 미치고 팔딱 뛸 일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동네 세탁소에 옷을 맡길 때 보관증을 받지 않는다. 서로 믿고 하는 장사라 편의를 위해 생략하는 것이다. 만약에 막무가내로 오리발을 내밀면 달리방법이 없다. 내일의 전투를 위해 이것저것 많은 것을 생각했다.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가 생각났다. 바지를 산 구매전표도 챙겼다. 택배 박스도 버리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화기 치밀어 올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다. 급히 할 일이 있어 사무실에 나갔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자가 날라 왔다. 수선이 완료되었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초전박살을 내려고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편으론 다행이었다. 그럼 그렇지 하루 전 일을 까먹고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서로 간에 소통의 부재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집에 오자마자 수선가게로 달려갔다. 여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어제 사모님 보내셨냐고 하면서 기장과 허리를 줄이는 것에 대하여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옷을 받아 들고 딸내미 부탁한 청바지를 맡기었다. 다음날 아내는 청바지를 찾으러 가서 어쩜 사람을 이렇게 바보를 만들 수가 있느냐고 따졌더니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정중히 사과하는 바람에 뿔난 얼굴을 거두어들이었다고 했다. 너무 순하게 생긴 아내를 얕잡아 본 것일까. 아니면 사기꾼으로 본 것인가. 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