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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의 추억

말까시 2012. 1. 7. 16:44

 

 

“나를 바라다보는 당신은 천년동안 행복할 것입니다.”

 

어라! 밖에 나와 보니 날씨가 좀 풀렸나. 귀가 시리지가 않네. 주말의 거리는 활기차 보인다. 살을 애일 듯 동장군이 힘에 부쳤는지 잠깐 뒤로 물러나 숨었나 보다. 강물에 얼음은 그대로 이지만 그 위에 흩어져 있는 공기는 열기를 머금어 훈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날갯짓하며 살포시 내려앉은 물오리는 먹이사냥에 물길 질이 바쁘다. 솜바지에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무엇인가 낚으려 뚫어지게 바라는 보는 강태공의 어깨는 무거워 보인다. 모닥불 위에 오른 냄비에서는 라면이 익어 가는지 맹렬하게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다. 착 달라붙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바이크 족들은 바람을 가르고 달려가는 모습이 한 마리 새처럼 날렵하다. 임진년 1월의 주말 풍경은 너그럽다 못해 여유가 축 늘어져 길어 보인다.

 

《 쥐불놀이의 추억 》

 

대보름날 낮에는 연을 날리고 밤에는 쥐불놀이를 한다. 깡통에 구멍을 뚫어 나무에 불을 댕겨 줄을 달아 뱅뱅 돌리면 활활 타오른 불꽃은 밤하늘을 장식한다. 신나게 돌리다 하늘높이 던져버리면 퍼져나간 불꽃은 지금의 폭음탄이 만들어 낸 불꽃보다 더 화려하다. 화력이 약해 시들해버리면 버려진 고무신과 말라버린 소똥을 함께하면 그 위력은 대단하다. 힘차게 돌릴 때마다 커가는 불꽃은 밤하늘을 대낮처럼 밝게 했다. 깡통을 구하지 못한 친구들은 부러움에 찬 모습으로 원을 그리며 타오르는 불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밤이 깊어 즐거움이 사라질 무렵 모든 억겁을 깡통에 싫어 멀리멀리 던져 버린다. 잘못 떨어진 불씨가 짚가리에 떨어져 불이 나는 바람에 혼 줄이 난적도 있다. 산산이 부서진 불씨는 낙하하여 한줌의 재로 변해 꽃피는 춘삼월 새싹의 밑거름이 되어 환생한다.

 

질펀하게 놀다보면 허기지기 마련이다. 본격적인 닭서리가 시작된다.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닭을 키우고 있었다. 토종닭이라 그 크기가 대단했다. 덩치가 큰 수탉 한 마리만 잡아 삶아도 대여섯 명이 먹어도 남아돈다. 야심한 밤 먹이 감을 사냥하러 동네를 휘젓고 돌아다니다 보면 개짓는 소리가 요란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집집마다 닭장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개를 키우지 않는 집을 택해 담을 넘어 닭장을 열고 손을 넣어 모가지를 잡고 비틀어버리면 두어 번 퍼덕거리다 숨을 거둔다. 잠자고 있는 닭은 워낙 멍청해서 인기척을 잘 못 느낀다.

 

다음 날 아침 온 동네가 벌집 쑤시어 놓은 것처럼 시끄럽다. 서리가 어느 정도 용인되는 시절이었지만 한 마리도 아니고 여러 마리가 사라진 집에서는 그냥 넘어 갈 일이 아니었다. 새벽부터 범인을 잡겠다고 골목어귀를 기웃거리며 흔적을 찾아 뒤지고 다녔다. 들키면 어쩌나 이불속에 꼭꼭 숨어 자는 척 했다. 친구 집 사랑방 아궁이에 설치된 가마솥에 넣고 삶아 먹었는데 흔적 없이 깔끔하게 치우긴 했는데 가슴이 조여 오며 떨리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사라졌나 싶으면 다시 와서 경찰에 신고를 한다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갔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들이 닥쳐 뒤질 수는 없는 것이다. 닭털과 뼈다귀는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고 국물은 하나도 남김없이 꿀꺽 삼켜버렸다. 아무리 과학수사를 해도 흔적을 찾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해가 중천에 올라 한낮이 되었지만 동네골목에 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꼭꼭 숨어 모습을 감춘 것이다. 혹여 돌아다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죄인의 모습을 감추고 태연한 척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닭 주인도 대략은 짐작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네 함께 어우러져 사는 처지에 경찰을 불러 강력하게 대응하기에는 부담이 앞선 것 같다. 그 이후 절대 닭서리는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하늘에 계신 어르신 이제서 용서를 빕니다. 너그럽게 받아 주실 것으로 믿고 착한 일 많이 해서 죄 값을 치루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