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혼 보험
선녀는 아름다웠다. 목에 하늘색 스카프를 두르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은 청순했다. 선풍기 바람에 흩날리는 머릿결은 검은 파도였다. 오뚝한 코끝에는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백열등 불빛은 물방울 하나하나에 기를 넣어 보석으로 둔갑시켰다. 자그마한 입에서 들릴 듯 말듯 흐르는 소리는 선녀를 더욱더 가냘프게 했다. 오므렸다가 다시 벌어지는 입술에서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수분이 촉촉이 녹아 들어간 분홍색 입술은 두 장의 꽃잎이었다. 조명이 흐드러진 다방 안에 앉아 있는 선녀의 몸에서는 광채가 솟아나고 있었다. 선녀는 사람이 아니라 천사였다.
다방 안에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버스터미널 다방이라 그런지 실내는 아주 넓었다. 의자와 탁자는 오래되어 보기가 흉했다. 뜨내기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실내 환경에 투자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다방 종업원들은 예의도 없이 껌을 질근질근 씹어가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조명도 어둡고 볼품이 없었다. 그 구석진 자리에 맞선을 보기 위하여 무리를 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골 분들이라 검게 탄 얼굴이었다. 어려운 자리다보니 모두다 보리차만 연신 마셔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오가면서 경직된 몸이 풀어졌다.
커피가 탁자에 놓이자 멀뚱멀뚱 보고만 있는 분들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이었다. 어떻게 마셔야 되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주위를 살피고자 눈동자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선남선녀 역시 그대로 쳐다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선녀의 아버지는 커피를 벌컥 마셔버렸다. 뜨거운지 입안에 있는 커피를 그대로 뱉어버렸다. 선녀는 당황했다. 탁자에 흩어진 커피는 산산이 부서져 한복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선녀의 아버지는 벌떡 일어서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선녀는 휴지를 들어 커피를 닦아보지만 옷깃에 묻어 있는 얼룩은 그대로였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후 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음미 할 수가 있었다.
일행 중에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말의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 선남선녀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여인의 말에 모두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선남선녀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있어 미소만 주고받았다. 양가 부모님들의 대화는 장단이 착착 맞았다. 더 이상 알아볼 것도 없다 하면서 선녀의 아버지는 바로 날을 잡자고 했다. 대화는 무르익어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선남선녀는 자리를 비워주기만을 기대했지만 좀처럼 떠날 줄을 몰랐다. 그 여인이 나가자고 했지만 선녀의 아버지는 옆에서 지켜본다고 한다. 선남선녀는 난처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녀의 아버지는 목석이 되어 지켜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 여인이 강제로 끌고 나가면서 자리는 정돈되었다.
다방안의 구석진 자리는 이제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스피커에서는 조용필의 ‘창밖에 여자’가 구성지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선녀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감기를 반복하면서 이야기를 잘도 이끌어 갔다. 선남도 손짓을 해가며 맞장구를 쳤다. 선남선녀는 황홀감에 빠져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둘은 마음이 오고 가고 있는 중이었다. 선남은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선녀도 쾌히 응했다.
시계바늘은 늦은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는 선남선녀의 대화를 더욱더 부드럽게 했다. 선남선녀는 얼굴에 열이 나면서 홍조를 띄었다. 주변이 소란하여 선녀의 목소리는 더욱더 커졌다. 선녀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건배를 제의 했다. 마다할 선남이 아니었다. 주고받은 맥주잔이 셀 수 없이 많아졌다. 선남선녀는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덧 시계는 자정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 막을 내려야 했다. 선남선녀는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 이후 두 번을 만나고 세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 『이혼보험』을 들었다는 선녀의 말에 선남은 기겁을 하고 영원히 그녀의 곁을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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