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먹는 여인은 아름답다.
다행히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길가에 있는 오물을 말끔하게 쓸어 갔다. 하늘도 맑고 도시의 건물도 깨끗해졌다. 연초에 내린 폭설로 도시는 온통 눈으로 인하여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검게 변한 눈은 도시의 흉물로 처치 곤란했었다. 소낙비는 아니지만 한줄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늘을 제하고는 거의 다 녹았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치워야 할 것을 한방에 해결한 것이다. 자연의 힘은 정말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동장군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내일은 더 춥다고 한다. 며칠 기온이 상승하여 기지개를 펼까 했는데 다시 몸을 움츠리지 않으면 어느 곳으로 냉기가 침투할지 모른다. 만반의 준비를 위하여 솜바지라도 입어야 할 판이다. 아무리 옷을 두껍게 입어도 마음이 차가우면 냉기는 뼈 속 깊숙이 침투하고 만다. 이럴 때 한 잔의 술은 너와 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긴장을 풀어주고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을 가시게 한다.
술 먹는 여인은 정말 아름답다. 투명한 소주잔에 술을 가득 채우고 증발 될까봐 바로 마셔버리고는 캬!~~하고 내뿜는 소리는 뭇 남성들의 가슴을 마구 뛰게 한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넣고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잔을 내려놓고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누가 부르르 떠는 저 여인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도 안경을 고쳐 쓸 것이다.
한잔 두잔 마시다 보면 얼굴은 상기되어 가을 단풍처럼 붉게 물들어 간다. 오색의 물결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붉은 색은 백열전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알코올의 힘에 의하여 목덜미까지 번져간다. 취기가 오르면서 술잔 밖으로 흐르는 술이 많아졌다. 덩달아 언성도 높아진다. 아직 혀는 꼬브라지지 않았다. 몸 상태는 적당히 데워져 최적의 상태이다. 정신도 말짱하다. 진솔하게 진행되는 대화는 모두다 전문가 뺨칠 정도의 박식한 지식이 오고갔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웃음은 방안의 공기를 타고 멀리 멀리 전해졌다. 술은 참 좋은 것이구나.......
우뚝 서있던 술병이 자빠졌다. 탁자에 굴러다니던 술병은 자그마한 흔들림에 바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이 시멘트가 아니라 깨지진 않았지만 술병에 남아 있던 술이 흘러 발을 적셨다. 술이 없다는 한마디에 일제히 한 병을 더 외친다. 술 먹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붉게 물든 얼굴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헝클어진 머리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머리로 술을 먹었나 보다. 립스틱은 지워졌지만 기름진 안주에 적셔진 입술은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0.1mm만 훔치면 아무 표시도 나지 않을 것이다.
술 먹은 여인의 입에서는 연거푸 양재기 깨지는 소리를 낸다.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추억의 그림을 꺼내 들고 울고 붓는 소리는 하나의 뮤지컬이었다. 여인이 술 먹고 질러대는 소리는 그 어떤 소리도 거북하지 않다. 방광이 가득 찬 것인지 흔들리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용감한 사나이가 찾아 나섰다. 술을 깨려는 듯 쭈그리고 앉아 있는 여인은 고개를 숙인 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짓누르는 어둠에 아픔을 느낄 만도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다시 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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