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잃은 눈동자
◇ 초점 잃은 눈동자들
공원에는 푸른 물결이 넘실거렸다. 뜨거운 햇살도 바닥을 데워 공원의 열기를 더했다. 정지된 물체들은 계절에 맞게 단장을 하여 공간의 모습을 아름답게 했다. 하지만 그 속에 갇혀 있는 인간만이 초점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하나 같이 초�한 모습들은 가끔 허공을 주시한 채 멈춰져 있다. 다시 바닥을 본다. 무엇이 불만인지 침을 뱉어보지만 발아래 떨어지고 만다. 당당하기만 했던 어깨선은 활처럼 휘어 축 처져 있다. 자연과 인간의 모습이 저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아름답기만 하여야 할 공원이 노인들에게 점령되어 제 모습을 잃어 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이 많다. 그 속에 가끔 할머니도 보인다. 무엇인가 거래를 하는 것 같다. 노인들의 얄팍한 호주머니를 털고자 수작을 부리는 보따리 장사꾼들도 있다. 연신 입에 침을 발라가며 열변을 토해내지만 신통치가 않아 보인다. 구경하는 노인들 역시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뒤져보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먼지뿐 돈이 없다. 보면 뭐하랴 가질 수 없는 것들, 뒤 돌아서 괜한 음료수통을 냅다 차버린다. 요란 한 굉음을 내며 날아간 깡통은 또 다른 사람의 발길질에 완전히 찌그러져 제 모양을 잃어 버렸다. 불만투성이의 기운이 넓은 공원을 감싸 돌고 있다.
갑자기 공원이 소란스럽다.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노숙자 한분이 지나가는 사람의 갈 길을 막은 채 담배를 달란다. 담배가 없다 하자 냅다 욕부터 질러댄다. 이렇게 해서 시비가 붙어 욕설이 난무하더니만 싸움으로 번졌다. 망가진 육신에서는 더 이상 힘을 상징하는 근육은 보이지 않는다. 술기운에 살아 있는 것은 오직 꼬부라진 목소리뿐 에너지는 이미 다 고갈되고 없다. 횡설수설 해보지만 그마져도 힘에 붙인 듯 이내 조용해진다. 서있을 기력도 없는 듯 흐느적거리다가 바로 꼬꾸라지고 만다. 이렇게 해서 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우리나라는 점점 고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도시 공원을 가보면 알 수가 있다. 옛날의 공원에는 젊은이들로 넘쳐 났다. 공원의 푸름과 함께 젊음의 소리가 와글와글 할 때 만해도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지금의 공원은 조용하다. 사람은 곳곳에 빼곡히 들어 앉아 있지만 소리가 없다. 가끔 대낮부터 술에 취한 노숙자가 울부짖는 소리만이 우렁차게 들릴 뿐이다. 그 때문에 젊은이들은 숲이 우거진 공원의 접근을 망설이게 한다. 그 옆을 지나가는 것조차 싫어한다. 경제개발 덕에 물질은 풍부해졌지만 준비되지 못한 생명연장은 그리 아름다운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나이에 걸맞게 해야 할 일이 분명 있음에도 이 사회는 고령자를 공원으로 내몰고 있다. 갑작스런 경제성장으로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결과이다. 은퇴 후 30년을 아무 일없이 공원만을 방황한다면 지루한 여생이 지옥과도 같을 것이다. 노인 공경이란 말도 점점 퇴색되어 지는 것 같다. 가족도 외면하고, 국가에서도 노인을 위한 정책이라고 하는 것들이 약간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이 고작이다. 노후, 누구도 나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 스스로 준비 하지 않으면 은퇴 후의 생활이 비참해 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돈도 있어야 하지만 죽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소일거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