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얼음 속에서 핀 작은 행복

말까시 2008. 1. 29. 13:02
 

◇ 얼음 속에서 핀 작은 행복


겨울 같은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차가운 칼바람과 함께 내리는 하얀 눈은 쪼그라들었었던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창밖의 울타리 언저리에는 마지막 남은 잎 새 하나가 바람에 날려 떨어질라 안간힘을 다해 매달려 있다. 달려가는 자동차의 꽁무니에서는 연신 하얀 연기를 마구 뿜어대고 있다. 춥기는 추운가 보다. 열기를 담은 연기가 하얗게 보이는 것을 보면 영하의 날씨가 분명하다.


차가운 칼바람이 허공에 떨어져 흐르는 물을 멈추게 한다. 멈추어버린 물은 얼음이 되어 절벽을 감싸버린다. 시커먼 괴암 괴석은 얼음 속으로 사라지고 이내 두꺼운 물의 덩어리는 자연의 한 모퉁이를 송두리 채 삼켜버린다. 투명하면서 발하는 하얀빛의 자태는 너나없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금은 둔탁하게 보이지만 자연의 신비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천의 선물인 것이다. 뾰족하게 내리 뻗은 물줄기는 액체의 성질은 이미 사라지고 단단한 덩어리로 탈바꿈하여 깡마른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 위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는 사람과 사람들의 움직임은 더디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찔하지만 빙벽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란 없는 것 같다. 밧줄하나에 몸을 맡기고 한걸음은 한걸음 빙벽을 찍어 올라가는 것 자체가 엉킨 삶을 하나씩 풀어 제쳐 나아가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 들은 용감했다. 허공에 매달려 흔들리어도 마음의 동요는 없다. 오직 한길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한결 같다. 결국 그 곳의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 높여 외친다. “해냈노라”   


빙벽아래 호수가 얼었다. 그 위에 하얀 눈이 내렸다. 스키장에 내리는 눈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존재이지만 얼음위에 내리는 눈은 썰매를 타는데 진로를 방해하는 아주 못 된 장해물이다. 사람은 그 위에 있다. 걸었다. 뽀드득 소리는 일 년에 한두 번 들을까 말까 하는 아주 귀한 소리다. 한순간 인간의 마음은 필요에 따라 눈의 가치를 바꾸어 버린다. 밟으며 좋았던 감정은 이내 사라지고 미끄러져야 할 얼음판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눈을 욕한다. 얼음위의 눈은 제거되어야 할 운명인 것이다.


육중한 기계가 호수위에서 움직인다. 얼음은 우지직 파열음을 냈지만 깨지진 않았다. 디젤엔진에서 나는 굉음은 고요한 호수가의 공기를 요동치게 했다. 뭉텅한 기계는 얼음위의 눈을 일순간에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투명하게 빛나는 얼음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후 얼음판이 넓어지면서 스케이트를 탈수 있는 트랙이 만들어 졌다. 그 가장자리에는 썰매를 탈수 있는 공간도 함께 마련되었다.


칼날은 얼음위에서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저 멀리 나아갔다. 안전을 위하여 칼끝을 뭉텅하게 했지만 작은 힘에도 쏜살같이 달아났다. 얼음판위에 새겨진 하루의 기록은 영원히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매김 하리라. 


그날 하얀 얼음위에서 칼날에 부서지는 작은 얼음 조각들이 내뿜는 사각 소리는 유소년 시절에 내가 들었던 그 소리와 똑 같았다. 잠시 사각 소리에 가슴이 뛰고 이어 흥분하기까지  했다. 아주 멀리서 들릴까 말까 하는 작은 소리는 까마득히 잊었던 시골 풍경을 새롭게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날 하루, 난 참 행복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