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계절이 겹치는 지금, 난 무엇을···

말까시 2007. 11. 2. 18:21
 

◇ 계절이 겹치는 지금, 난 무엇을···


나뭇잎은 점점 수분을 잃고 마지막 자태를 뽐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녹색물결은 하나 둘 탈색 되어 볼품없는 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단풍나무는 붉은 빛을 띠면서 사람들을 끓어 모으고 있다. 푸름과 오색물결을 선사했던 나뭇잎은 결국 찬바람이 불면서 시들기 시작하여 누런색을 띠다가 회색빛을 발하고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짐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새해를 시작하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해를 마감하는 겨울이 문턱에 다가온 듯 바깥 공기가 아주 차다. 낮에는 해가 내리쬐어 차가움을 덜 느낄 수 있지만 해가진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저절로 몸을 움츠리게 한다. 종종 걸음을 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는 것도 떨어진 온도 탓 인가보다.


길가의 포장마차에서는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곧바로 사라지지 않고 한참을 날린다. 차가운 냉기가 수증기의 모양을 잠시 머물게 한 것이다. 그 수중기안에는 어묵향이 그윽하게 묻어나오고 있다. 뭉텅한 어묵 하나 입에 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뜨거운 국물을 한모금만 마셔도 추위는 금방 달아난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도 추위와 허기를 면했기에 갖는 순간의 행복이 아닌가 한다.


수중기의 높이가 하루가 다르게 높아만 가는 것만 보아도 이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증표인 것이다. 점점 변화하는 날씨의 연속이 세상이 따뜻함보다는 상막함이 더해지는 것이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 “을씨년스럽다.” 라는 말을 대변이라도 하듯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도 낙엽이 수북이 쌓여 나뒹굴고 있다. 막바지 공사를 알리는 중장비의 굉음도 이때쯤 되면 유난히  크게 들린다.


발길에 부서지는 낙엽보다 오가는 차량에 휘날리어 얼굴에 부닥치곤 곤두박질하는 낙엽이 더 많다. 낙엽이 때리는 모양은 아름답지는 못하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설악산의 단풍은 아니지만 가까이에서 만져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것이다. 청소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상막한 도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선사하고 간 낙엽에 고마움을 전해야 할 것이다.    

   

자연은 어김없이 봄에 싹을 틔어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 잎이 지면서 임무를 완수한다. 지구온난화로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자연의 진리는 거의 변함이 없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한해가 시작하는 정월초하루 새벽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면서 새해 소망을 다짐하곤 열정 없이 무기력하게 보내다가 흰눈이 내리는 섣달 그믐날 이룬 것이 없다며 탄식을 한다.


매년 탄식으로 한해를 보냈는데 금년은 무엇을 하여 무엇을 이루었는지 아직 성과는 없지만 두 달여 남은 기간동안 고군분투 한다면 떨어진 낙엽 앞에서 덜 부끄럽지 않을까. 두 달 남지 않았다고 여기서 망설인다면 더 이상 전진은 없을 것이다. 흔히 쓰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계절이 겹치는 지금부터 맛깔스럽게 보내봄이 제야의 종소리를 아름답게 들을 수 있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