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동으로 끝난 추석명절
◇ 한바탕 소동으로 끝난 추석명절
아주 옛날에는 추석이 지나가면 허탈했다. 그러나 지금은 속이 후련하다고 한다. 그만큼 옛날과 지금의 명절 분위기는 확연이 다르다. 우리 어릴 적 그러니까 70년대 만해도 도시로 간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다들 태어난 곳에서 둥지를 틀고 큰집 작은집 옹기종기 모여 잘 살았다. 명절이 다가와도 먼 길을 가야한다는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그냥 좋기만 했다.
세월이 흘러 가족들이 전국에 흩어져 살다 보니 집안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한곳에 모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민족대이동이 일어나는 명절에 고향 한번 가는 길은 정말 보통일이 아니다. 이렇게 가는 길 오는 길이 힘들다 보니 사소한 일로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그게 바로 가정을 이룬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명절분위기는 또 다르다. 즐겁고 아름다워야 할 명절이 점점 어렵고 힘든 일로 변질되어 가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녀 총각시절 명절이 오면 그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들도 만나볼 수 있고 고향의 정취도 느낄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난후 한집안의 가장으로서의 명절은 즐거움보다는 부담감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홀로일 때의 자유스러움은 사라지고 양가에 챙겨야 할 것들만이 머리에 맴돌다 보면 화내는 일이 잦아진다. 애들은 세배 돈 받을 생각에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데, 빠듯한 살림에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면 즐거워야 할 고향길이 꽉 막힌 고속도로만큼이나 어지럽고 복잡해진다.
하나와 둘이 차이가 이렇게 차이가 난단 말인가. 남편들이야 고향에 도착해서 친지 어른들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 해포를 풀고 즐겁지만 한편으론 집에서 묵묵히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는 아내는 뿔이 단단히 나와 있을게 뻔하다. 빨리 정리하고 친정에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밀려오는 손님에 선뜻 나서지를 못한다. 아내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챙겨줘야 할 남편은 친구들 만난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간 이후 깜깜무소식이다.
시댁에 도착한 이후로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낫 설기만한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랴, 시어머니 와 동서들과의 이야기에 동조하랴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휘영청 밝은 둥근달을 보며 친정에는 언제 갈거나, 한탄을 하다보면 어디선가 나타난 남편은 곤드레만드레 되어 얄밉게도 밥 달라 한다. 배를 채운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곧바로 곯아떨어진다. 금년 명절에도 친정에 가기는 틀렸구나. 서러운 아내는 눈물방울을 훔치고는 포기하고 만다.
귀경 길 차안에는 적막감이 흐른다. 남편은 술로 명절을 보내 탓에 피곤하여 말 한마디 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아내 역시 줄곧 음식장만에 손님맞이에 파김치가 다 되어 몸살 나기 직전이다. 마냥 즐거운 것은 용돈을 두둑이 받은 애들뿐이다. 고향 가는 길보다 상경하는 길은 더더욱 꼼짝을 못한다. 참고 참았던 아내는 결국 휴게소에 가서 폭발하고 말았다.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운전대만 잡고 자기만 피곤한양 휴게소에 도착하자마자 쏜살같이 화장실로 사라져 버리는 남편이 야속하기 짝이 없다. “인간아! 인간아! 어찌 그리 인정머리도 그렇게 없냐.” 뒤통수에다 쏴 붙이고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전통, 언제까지 아내들을 혹사시켜야 하는가. 아내들의 반란이 일어나기 전에 남편들의 각성이 필요할 진데, 아직도 유교전통에서 벗어나기는 시기상조인 것 같다. 우리세대가 가고 다음세대가 오면 아마도 아내들의 천국이 오지 않을까, 아내들이여! 그때를 생각하며 이제껏 쌓이고 쌓인 노여움을 푸시는 것이 가정의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주장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