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얘기

가을이 저만치 오기는 왔는가

말까시 2007. 9. 4. 12:58
 

◇ 가을이 저만치 오기는 왔는가.


가을이 저만치 오기는 왔는가. 아직은 그냥 선선할 뿐인데, 여기저기 가을이 왔다고 난리들이다. 도시의 한 복판에 있어서 모르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황량한 콘크리트 더미에 둘러싸인 도시에서는 계절이 오고 가는 것을 느낄 수가 없다. 단지 온도의 변화로 계절의 감각을 조금 느낄 뿐이다. 사무실 또한 화분이 있지만 사시사철 푸르니 그 또한 계절의 변화를 알 수가 없다. 겉옷을 하나 더 걸친 직원들의 옷차림에서 아 가을이 왔구나 하고 한마디 하고는 그 뿐이다.


사계절중에서 가을은 넉넉함이 넘쳐나는 풍성한 계절이라고 하는데, 도시의 풍경에서는 가을의 색을 젼혀 볼 수가 없다. 혹 재래시장의 골목어귀에 쌓아놓은 과일에서 가을의 빛깔을 볼 수가 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풍성한 가을이라고 비유 한다는 그 자체가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 내내 가꾸어 가을에 거둬들이는 농부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한다. 방송매체에서 연일 떠들어 대는 것을 보니 가을은 농촌의 들녘에서부터 서서히 무르익어 숲이 우거진 산등성이를 타고 회색빛 도시로 물결쳐 흐를 날이 머지않았나 보다.  


가을이 오면 좋다가도 한편으론 왠지 서글퍼질 때도 있다. 결실 후에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나뭇가지의 초라함에서 밀려오는 허탈감이라고 할까. 축축한 논바닥에서 푸르게 잘 자라던 벼이삭이 가을이 오면서 콤바인에 삭둑 잘려나갈 때마다 그 속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던 곤충들은 죽음에 이른다. 하나의 기쁨이 다른 것에는 슬픔인 것이다. 여름 내내 울려 퍼졌던 자연의 소리도 가을이 오면서 서서히 줄다가 겨울이 오면 사그라지고 만다. 생명의 끈이 시원한 바람을 타고 융성했다가 삭풍을 만나면 깊은 땅속의 세계로 들어가 깊은 잠에 이른다.


가을이 진행이 되어 나뭇잎에 수분이 빠져 나가 오색물결을 이룰 때, 사람들은 자연의 멋에 탄성을 자아낸다. 주체 할 수 없는 고독이 밀려와 시름을 앓는 것도 오색물결이 넘실거릴 때면 그 농이 더해만 간다. 아린 마음에 단풍이 들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질 수만 있다면 가히 행복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마음은 따듯한 공기로 가득 찬다. 창가에 기대어 내리는 가랑비에 산산이 부서지는 상념이 허공에 흩어지면서 한 소절의 시가 되어 다시 돌아오는 계절 또한 가을이 아닌가. 너나 나나 모두 시인이 되어 한 구절 한 구절 종이에 옮겨 적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보면 나이가 먹었어도 감정의 크기는 오히려 커져버린 느낌이 든다.


가을아 빨리 와라. 네가 빨리 오면 즐거운 추석이 다가온다. 젊음이 넘쳐흐를 때는 추석하면 그냥 즐거워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곤 했다. 고향을 등지고 도시로 나와 살다보니 추석명절에 고향 가는 길이 고행 길로 변한지 오래다. 부모님 살아생전에 빠짐없이 다니는 것이 도리인줄 알지만 해가가면 갈수록 못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만 간다. 가는 길 오는 길 힘들어도 고향에 안착하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이제 그런 즐거움도 누리기가 어려워졌다. 무엇이 우릴 그토록 도시에서 머물게 한 것인가. 세월이 가면서 고향이 색깔이 퇴색한 것인가. 버거운 삶에 짓눌리어 옴짝달싹 못하는 가두어진 인생이란 말인가.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다할 때까지 고향의 길을 멈춰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가오는 추석에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풍성한 가을의 정취를 고향에서 마음껏 누려봄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