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소나기

말까시 2007. 8. 7. 12:49
 

◇ 소나기


장마가 물러가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 피서의 절정기인 요즈음, 하루가 멀다 하고 소낙비가 내린다. 하늘에서는 천둥과 번개가 요란스럽게 울려 퍼져 괜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얼마 전에는 수락산과 북한산에서 벼락이 떨어져 많은 사상자를 내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한줄기 소나기는 더위에 지친 많은 사람들에게 청량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휴가의 절정기인 피서 철에 소나기는 아주 고약한 존재이다. 바닷가나 산과 계곡에서의 달콤한 시간을 망쳐놓는 주범이도 하다. 예고 없이 아무데나 뿌려대는 소나기는 피서 철의 훼방꾼임에 틀림없다. 


어린시절, 한줄기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천둥 번개가 치면 일순간 공포의 도가니 속에 빠져버린다. 이럴 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다 보면 옷은 금방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되고, 햇빛에 바싹 말라 탐스러웠던 고추는 빨간 물을 토해내는 흉물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소나기는 많은 사람들을 아주 당황하게 한다. 비에 젖어버린 고추는 다시 태양에 잘 말려도 상품가치가 떨어져 시장에 내다 팔수가 없다. 물을 흠뻑 먹은 멍석은 아주 많은 시간을 말려야 수분이 달아난다. 연일 비가 들이 치다 보면 멍석자체에서 곰팡이가 피면서 썩어 들어간다. 아까운 멍석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멍석 하나를 만드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겨울 내내 볏집과 씨름해도 멍석하나 완성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시골길 옆에는 각종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소나기가 한줄기 내리기라도 하면 꼿꼿하게 자라 있던 잡초도 힘없이 주저앉아 버린다. 잠시 소나기가 물러가고  햇볕이 쨍쨍 내리 찌면 아이들도 덩달아 밖으로 달려 나온다. 땅 표면으로 거슬러 올라와 길게 늘어져 기어가는 지렁이 때문에 애들은 화들짝 놀라곤 한다. 애나 어른이나 지렁이를 보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심술보가 발동하는 것이다. 징그러움에 놀란 마음을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어른들은 삽으로 토막을 내고 애들은 발바닥으로 뭉개버린다. 그땐 자연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움직이는 생명체는 보는 족족 죽여 버렸다. 인간은 본디 선하게 태어난다고 하는데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악하게 만들어 버린 걸까. 참으로 묘한 일이다.


소나기는 가고 하늘은 청명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엄마 아빠는 들녘에 나선다. 밭으로 논으로 곡식이 잘 자라고 있는지 비 피해는 없는지 살피다보면, 풀 섶에 동그랗게 몸을 휘감고 있는 뱀을 보곤 기겁을 한다. 그럴 경우 애들은 또 한번 심술보따리를 풀어 제친다. 무수히 많은 돌을 던져 피투성이가 된 뱀은 결국 죽음에 이른다. 한 생명이 죽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또 다른 자연 속으로 마구 뛰어 든다. 선과 악이 번갈아 요동치는 푸른 들녘에서 자연의 고마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자란 것이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푸르게 잘 자란 것 같다.  문명의 이기는 없었지만 소나기를 직접 맞으면서 국어책에 실린 황순원의 소나기를 배웠지 않는가. 개울이 있고 원두막이 있는 시골 그 곳에서 풋내기들의 사랑을 글이 아닌 그림으로 배운 것이다. 아름다운 동화의 나라에서 눈이 부시고 귀가 맑게 자라온 시골, 갈 때마다 조금씩 변해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개발도 좋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장차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