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정감이 넘쳐나는 내 고향♦
지난해 추석이 다가올 무렵 문중 선산에 모셔져 있는 조상님들의 묘에 대하여 벌초를 한다고 긴급 호출이 왔다. 10월에 시제를 지내는 것만큼이나 벌초역시 문중의 큰 행사이다. 일년에 한번 있는 벌초행사에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만에 일가친척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고향 가는 길, 왠지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달구지를 끌고 고향을 향해 달려갔다. 세 시간 남짓 달리다 보니 어느새 굽이굽이 휘어져 정감이 넘쳐나는 고향의 길목을 접하게 되었다. 공기 또한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상큼 그 자체였다. 머릿속 깊숙이 파고드는 시원함에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 던 비는 잠시 멈추고 낮게 구름만 드리운 채 작업하는데 있어서 최상의 날씨였다.
이른 아침 친인척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몇몇 친지들은 좀 늦게 나타나는 바람에 문중 어르신들에게 약간의 꾸지람을 들었다, 다행히 많은 친지들이 참석하여 벌초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예초기를 짊어지고 선산에 도착하여 힘차게 시동받줄을 당겼지만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주 쓰는 기계가 아니라 관리가 좀 소홀했나 보다. 이것저것 조작하고 여러 번 당기고 나니 벌건 대낮인데도 별이 반짝이며 하늘이 노랬다. 벌초하기도 전에 예초기 시동 거는데 에너지를 다 소비해버린 것이다. 참석한 친지들 중 그래도 젊은 층인데, 갈고리만 들고 쉬운 일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오늘 하루 난 죽었구나 생각하니 하늘이 또 노랬다.
앵앵거리는 예초기 소리에 잘려나가는 풀잎들, 덩달아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날아올라가는 풀벌레들, 몇몇 놈들은 예초기의 칼날에 산산이 조각나 풀 섶에 흩어져 날아갔다. 조상님들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풀벌레에게는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서있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처럼 낫으로 벌초를 한다면 힘은 들겠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일은 없었을 텐데, 풀벌레에게는 미안하고 참으로 안된 일이었다.
♦구라파전쟁이 난후 배설의 기쁨♦
얼마나 했을까. 갑자기 아랫배가 사늘하게 식어가고 내장이 뒤 틀리면서 통증이 밀려왔다. 평소 움직이지 않던 몸이 아침 밥 먹은 이래로 계속 몸부림치며 쉬지 않고 일을 하는 바람에 오장 육부가 놀라 심술을 부린 것이다. 빨리 배설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았다. 노천에서 일보는 데는 콩밭이 최고인데 저 멀리 보이긴 했지만 그 곳까지 가다가는 중간에 한두 방울 샐 것만 같았다. 할 수 없이 가까운데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뒤 틀리는 배 가죽을 움켜잡고 은폐 엄폐가 잘되는 곳을 찾아 해매이다 보니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하늘에선 또 별이 보이고 또 노랬다. 벌써 세 번째다. 살아야만 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는 법,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숲이 있어 적당히 가려진 천해의 자리를 발견했다. 정신없이 허리띠를 풀고 바지가랑이를 내리는 순간 물 폭탄이 쏟아져 내렸다. 야! 이것이 배설의 기쁨이구나. 그 어느 것도 배설의 기쁨만큼 하랴. 정말 시원했다.
배설의 기쁨도 잠시, 아뿔사! 화장지를 챙기고 왔어야 하는데, 급한 나머지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었다. 이 난국을 어찌 한단 말인가. 콩밭이었다면 콩잎 몇 장 포개서 쓱 문질러 버리면 깔끔하게 뒤 처리를 할 수가 있을 텐데, 좀 고생이 되어도 콩밭으로 갈걸, 이제 와서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주변을 살펴보니 저만치 참나무 잎이 보였다. 벌떡 일어나 걷고 싶었지만 똥꼬 전체로 퍼져나가는 노란색 오물을 주체할 방법이 없었다. 처음 그자세로 엉거주춤 기어가서 참나무 잎 두장을 따서 똥고 깊숙이 밀어 넣어 힘을 주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우지직 소리가 나더니 가운데 손가락 하나가 참나무 잎을 뚫고 똥고를 향해 돌진 하고 있었다. 잘 찢어지는 참나무 잎의 성질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잽싸게 손가락을 빼고 풀밭에 썩썩 문질러 더러운 오물을 제거하였지만 냄새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물이 없는 산에서 손톱사이로 스며든 냄새를 제거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여러 장의 참나무 잎을 소비한 후 대충 마무리를 할 수가 있었다. 등줄기에는 땀이 범벅이었다. 배설하는데 힘을 다 소비하여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뒤가 개운치 않아 불편한 걸음을 옮겨 작업장에 도착해보니 벌써 많은 봉군들이 벌거숭이가 되어 있었다. 상당히 긴 시간을 허비한 것 이다. 문중 어른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날 하루 뒤처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하루 종일 찝찝하고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간만에 문중어른들에게 문안 인사를 할 수가 있었고 일가친척을 만나 반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뜻 깊은 날이었으며 더욱이 깨끗해진 조상님들의 봉군을 보니 가슴이 뿌듯했다.